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히브리서 6장 1-12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성도가 살아가는 터전은 결코 진공상태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과 구별된 수도원에서가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서 지속된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는 도시 안에서 예수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일은 마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 다른 가치,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살아야하니, 세상의 흐름에 가벼이 몸을 띄우고 살아갈 때와는 다른 수고가 동반된다. 이러한 삶의 터전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한다. 본문은 땅의 경우를 예로들어 성숙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땅에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말라있던 땅을 적시고, 빗물에 젖은 땅은 하염없이 물러진다. 물러진 땅이 다시 햇빛 아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비에 젖었다 마른 땅은 겉으로 보기에 이전과 같은 모습일지 모르지만, 결코 같을 수 없다. 하늘에서 내린 비를 머금고 느슨해진 사이에 많은 비의 성분을 전해받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흡수하고 마르기를 반복한 땅은 비로소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낸다. 그 땅은 표면적으로 자주 질퍽했으나 그 과정을 통해 생명이 뿌리내릴 수 있는 좋은 땅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식물(채소)의 자라는 과정을 비유하여 주시는 것은 이 땅에서의 과정을 통하여, 하늘의 과정을 상고하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채소가 성숙되는 것처럼, 성도의 신앙이 자라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식물이 자라나는 것을 보고, 점차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떠했으며, 얼마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깨닫는가를 알려주신다. 그래서 비를 통해서(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굳어진 마른 땅이 물러지고(마음의 상태가 말씀을 받아드리고), 씨가 싹을 내듯이 (씨껍질이 죽고, 싹이 올라오듯이) 옛사람이 죽고,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의 선물을 열매로 받는 것이다. 이 믿음의 선물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깨닫게 되고,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지를 알게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는 원래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자기만의 왕국을 세워보겠다는 탐욕을 가진 자들이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비(말씀)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좋은 땅과는 반대로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 버림당하고 저주받아 불사름을 당하는 땅의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가시와 엉겅퀴는 창세기 3장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다. 가시와 엉겅퀴는 심판을 상징한다. 본래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했고 이후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었다. 하나님을 등질 때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이 된다. 인간은 좋은 땅이 될 수 있고 또한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저주받은 땅이 될 수도 있다. 이 차이는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상고하고, 깨닫는가의 여부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났음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마다, 좋은 땅이 되는 것이다. 오직 회개만이 구원의 길인 것이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대상은 거듭난 자들이다.『초보』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본적 사항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6장 1절에서는 초보를 버리라고 한다. 거듭난 자도 양육을 받아서 교사가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그렇지 못한 상태를 말하고 있다. 베드로전서2장 2절에서 『갓난 아기들처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이 말씀은 niv를 번역하여, 갓난 아이가 신령한 젖을 먹고 자라야 구원에 이르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kjv는『as newborn babes, desire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that ye may grow thereby:』거듭난 자도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6장 5-6절에서『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여기서 하나님의 선한 말씀은 『레마』라고 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원래 거듭나지 못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지만, 자기부인의 회개를 통해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것이다. 그러나 신령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 거듭났다고 말을 하면서도 배도의 길을 걷는다면, 다시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정말 거듭난 자라고 생각하는가? 너무나도 중요한 말이다.『믿기만 하면 거듭났다』고 생각하면 곤란한 것이다. 거듭났다고 말을 하면서, 타락한다면 다시는 새롭게 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날마다 죽은 자같이 되라는 것이다. 또한『싸워라』고 한다. 거듭났다고 말을 하면서 싸우지 않고 계속 보혈의 피를 요구한다면 거듭난 자가 아닐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 땅에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거듭나는 자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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