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히브리서 6장 13-20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2장 4절에서『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거듭남은 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주신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히는 삶을 갈 뿐인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죄악과 싸워 피흘려 승리하는 길이다. 육으로부터 나오는 생각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부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산다고 하는데, 그들은『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했다. 아낙자손과 싸울 마음이 없는 것이다. 시작도 해 보지 않고, 주저 앉아버린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도는『로고스』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도를 다시 닦지 말라고 하신다. 닦지 말라고 하시는 내용이『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의 회개, 신앙과 세례와 안수, 죽은 자의 부활, 심판에 대한 교훈들』이다. 왜냐하면『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는 것이다. 초보의 수준에 머물지 말고, 교사가 되는 수준에 이를 때에 처음 가졌던 믿음을 견고히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3장 14절에서『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우리 말 성경은『확신한 것』이 목적격이 되어있지만 kjv는『For we are made partakers of Christ, if we hold the beginning of our confidence stedfast unto the end;』(우리 확신의 시작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시작이 초보라는 말이다. 그래서 구원받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된다.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한다. 출애굽한 백성들처럼 마지막에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말한다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3장 15-16절에서『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출애굽한 히브리인들이 온갖 기적을 경험하고 갈라진 홍해바다를 건넜지만, 광야에서 다 죽은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은 구원의 시작일 뿐이다. 구원의 확신은 출애굽하여 홍해바다를 건넌 사람들이다. 히브리서 4장 1절에서『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이 말씀의 대상은 홍해바다를 건너 광야에 이른 사람들이다. 4장 2-3절에서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이미 믿는 자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말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가 거듭난 자다.
구원의 확신은 출애굽하여 광야를 나왔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에 결부될 때 구원받는 믿음으로 나타난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홍해바다를 건넜지만, 칠일 만에 물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하나님은 반석을 쳐서 물을 먹이게 된다. 이것을 고린도전서 10장 1-5절에서 바울이 해석해 준다.『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구원의 확신이 구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상황이 자신을 어렵게 할 때 넘어질지도 모른다. 끝까지 그 확신을 부여잡지 않으면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히브리서 3장 12-13절에서『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위하여 맹세의 약속하셨다.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신다고 보증하신 것이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저버린 것처럼, 다시 옛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위하여 세상죄를 모두 사해주셨다. 예수님이 세상죄를 가지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여 다시 예수의 피로 정결의식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임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죄를 다 가져갔다고 하는데, 그래도 인간의 육신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몸이라, 날마다 정결의식을 통해서 죄를 사하심을 받아야만 된다는 식으로 구약의 제사를 떠올리게 한다면, 하나님은 율법으로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죄는 세상에서 저지런 잘못으로 사탄이 하나님께 송사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의 피값으로 주고 산 자(거듭난 자)는 사탄이 송사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하여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인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려는 자들이며, 결국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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