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히브리서 7장 1-11절)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멜기세덱에 대한 이야기는 히브리서를 제외하고 창세기 14장에서 한번, 시편 110편에 한번, 모두 두 번 기록되어 있다. 대체로 성경의 인물을 소개할 때 선조들의 이름과 더불어 설명되어지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창세기 14장에 멜기세덱 이야기가 나올 때는 부모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본문3절에서도 멜기세덱은 부모가 없고, 족보도 없고, 그의 출생에 대한 설명도 없다. 멜기세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의 믿음의 아버지이며, 민족의 조상이다. 그런데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구약시대에는 항상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축복했다. 아버지가 자녀를 축복했고, 제사장이 백성을 축복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은 위치의 사람으로 등장하는 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창세기 13장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모든 좋은 곳을 넘겨주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지역을 택하게 된다. 11절에서『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그런데 아브라함은 롯에게 다 양보하였으므로 결국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된다. 롯은 육적인 눈으로 좋은 곳을 선택했지만 결국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겨우 몸만 빠져나오는 신세가 된 것이다.
창세기 13장 18절에서『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마므레 상수리 나무에 있는 아브라함의 장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된다. 창세기 14장에서 전쟁이 일어나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해준다. 14절에서『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그래서 아브라함은 롯을 구하고 멜기세덱을 만나게 된다.
창세기 14장 18-20절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람에게 축복했다. 그리고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 얻은 것은 히브리서 7장 4절에서『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노략물 중 십분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 일은 아브라함 만 바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바친 것으로 확장된다. 7장 5-6절에서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 직분을 가진 자들이 십일조를 취하라는 명령이 있지만 멜기세덱은 레위 족보에 들지도 않았음에도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7장 9-10절에서는 아브라함만 바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대 레위까지 바쳤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레위는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의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늘로부터 주어진 복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축복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십일조의 의미가 된다. 아브라함, 레위, 아스라엘 모두가 하늘에서 주어진 복으로 말미암아 살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레위 자손은 십일조를 받는 자들이지 십일조를 내는 자들이 아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의 승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일 좋은 것을 바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전쟁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을 만나 떡과 포도주를 마시고, 아브라함은 노략물을 십일조로 바치는 일이 오늘날 교회에서 적용시키면 이 세상의 일이 아니라 영적 싸움의 이야기가 된다. 오늘날『노략물의 십일조』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7장 8절에서『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십일조는 율법에 따른 십일조와 영적인 십일조가 있다는 말씀이다. 율법에 따른 십일조는 이미 폐지되었으나, 아브라함이 바친 십일조는 영적인 의미로 받아드려야만 한다. 오늘날 영적 전쟁으로 인해서 승리하여 사는 삶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귀한 것으로 보답하는 것이다. 율법의 규정으로 생각하는 십일조가 아니라, 영적인 의미로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율법적인 규정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영적인 것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제사장 지파는 레위지파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났을 때는 레위 지파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멜기세덱이 레위 지파보다 오래된 제사장이라는 점에서 아직 조상의 몸 안에 있던 레위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통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는 의미다. 즉 멜기세덱이 레위 지파 제사장들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조상을 근거로 선출되었다. 즉 특정한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조상을 근거로 하지 않았고, 불멸의 생명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증거한다. 레위지파 제사장들은 유한한 존재로 모두 죽음으로 인해 사역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성도를 위해 변함없이 제사장으로 존재하신다. 그래서 죄와 죽음을 정복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그 분만이 항상 성도와 하나님 사이를 이어주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도와 하나님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온전히 거룩하시고, 순결하시며 죄인들과 구별되시기 때문이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자신의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서 완전히 승리하셨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