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히브리서 8장 1-5절)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8장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핍박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굳게 지키도록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계속해서 변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후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새로운 대제사장의 사역을 완전하게 행하시는 분, 옛 언약과 비교해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심을 선언한다.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로 하늘의 성소에서 섬기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은 구약백성들처럼 더 이상 그림자를 통한 것이 아니다.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들은 단 한 사람도 예수님이 행하신 이와 같은 역할을 대신할 자격도, 능력도 없었다. 예수님은 하늘의 성소에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셔서 위엄과 권세를 누리고자 하심이 아니라 성도를 위한 중보 사역을 담당하시기 위해 섬기시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의지하여 되돌아가지 말고 굳건히 서라는 것이다. 이 사실은 안다면 성도들 역시 영적 여정을 방해하고 삶을 무너뜨리는 온갖 죄와 어둠으로부터 벗어나 유혹의 세상을 거스르는 걸음을 걸을 수 있다. 성도에게는 중보자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누구나 그 사실을 믿게 하셨다. 그러나 부활과 승천은 아무에게나 보여주시지 않으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따른 자에게만 주님의 증인으로서 함께 했다. 또한 그들에게 성령을 부으셨다. 부활은 성소에 들어간 삶과 같지만 승천은 지성소에 들어간 삶이 된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어린양이 보좌 우편에 서 있다고 말한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어린양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요한복음에 가면 어린양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예수님은 죽으러 온 제물이라는 것이다.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고, 심일 후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셨다. 오순절 날 성령이 오셨으며, 이제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그대로 재림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잡혀간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했다. 롯은 아브라함에게 육신의 조카이지만 영적으로는 형제라고 했다. 창세기 14장 14절에서『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And when Abram heard that his brother was taken captive, he armed his trained servants, born in his own house, three hundred and eighteen, and pursued them unto Dan.(kjv)』niv는 relative(친족)로 번역했다. 아브라함은 롯을 위해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한 것이다. 

이 전쟁은 정말 육신의 생각으로는 믿을 수 없는 전쟁이다. 집에서 기리고 훈련받은 삼백십팔 명이『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그런데 창세기 14장에서『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이 네왕들이 엘람왕 등 다섯왕들에게 싸움에서 패하고, 롯이 붙잡혀 간 것이다. 그런데 겨우 318명이 전쟁에서 이기고 롯을 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성의 왕인 시작도 끝도 없는 멜기세덱을 만난 것이다.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아브람에게 주었다. 오늘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 전에 제사장으로 모습을 보이셨다.『이것은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레미야서에서만 기록되어 있는 새언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더 좋은 언약의 중보라는 것이다.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로서 더 좋은 언약을 주시는 것이다. 모세를 통해서 세운 언약은 옛언약이 되었다.

성경은 새 언약이 옛언약 보다 더 좋은 것임을 강조하면서 새언약의 중보가 되시는 예수님을 옛언약의 중심에 섰던 모세와 대립시킨다. 그리스도께서 중보가 되신 새언약이 모세가 중보가 되었던 옛언약보다 훨씬 탁월한 것임을 드러낸다. 옛언약 안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새언약 안에서 사람들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구약의 중보인 모세는 인간이 죄 아래 있음을 보여주었을 뿐이나, 신약의 중보이신 그리스도는 성도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 

히브리서 7장 28절에서『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신명기에서 말하는 맹세의 말씀이 새언약과 연결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8장 8절에서 인용한 예레미야 31장의 언약도 바로 새언약이다.『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새언약은 영어성경에는 new covernant로 번역되었다. 신약성경에서 covernant로 번역된 것이 20회 정도 등장하는데, testament로 번역된 곳이 13군데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같은 언약이다. 우리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old testament, new testament로 읽는다. covernant이던 testament이던 중요한 것은 언약이라는 것이다. 언약은 히브리서 9장 18절에서 상속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이 유언장을 미리 써놓아도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 효력을 발생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다음에 새언약이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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