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진들(2)
(히브리서 11장 17-31절)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11장에서 미래의 사건을 『실상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고, 결국 그 약속이 실현되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사실임이 입증된, 그 믿음의 삶을 살아낸 선조들을 칭송하는 두 번째 단락이다. 첫 번째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이다. 아브라함은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미 하나님께서 이삭이 네 자손이다 말씀하셨기에 비록 그가 희생제물로 드려져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실 것을 믿은 것이다.
이어 믿음으로 이삭도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다. 구체적으로 이 축복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언급하지 않고 장차 있을 일에만 주목하게 한다. 이 믿음대로 이삭도 장차 있을 일에 대해 축복했고, 야곱도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했고, 요셉도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뼈를 위하여 명했다고 언급했다. 즉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은 말한 것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결국 현실로 실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이들의 삶도 바로 믿음의 삶이었다는 것이다.
모세부터 기생 라합 까지 소개된다. 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을 따라 장차 있을 일을 믿었듯이, 모세도 그의 부모의 믿음으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여 석 달 동안 숨겨져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킬 자로 생존할 수 있었다. 이 아이를 숨겨 둔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부모는 왕의 명령을 거스르며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 믿음의 본을 따라 모세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다.『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그의 믿음을 떠남으로 실천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도,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넌 것도, 그리고 여리고를 돈 것도 모두 믿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입증하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기생 라합도 여리고가 멸망할 때 구원받으리라는 약속을 믿고 죽음을 무릅쓰고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여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과 함께 멸망당하지 않았다.
믿음이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이후 경험을 통해 입증된 다는 사실이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보이지 않는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조건과 환경에 상관없이 순종할 때 경험되고 입증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자기를 부인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믿음이 오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다 거짓이다.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자기부인의 회개를 통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거듭난 생명을 얻어, 하늘의 보좌에 앉히운 것을 믿는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와 함께 승천한 자가 된다. 예수와 함께 부활한 자가 된다. 예수와 함께 육과 혼이 죽은 자가 된다. 성경책에 그렇게 되어 있으므로『네 믿습니다』가 아니라, 삶에서 그렇게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대해서 살아있고, 율법적으로 살아가고,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의 생각을 신뢰한다면 말로만 믿는 것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1장 1-2절에서 말하듯이『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죄에 대해서 죽어야만 죄가 떠나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은 오직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이게 그리스도의 계시요 비밀이다.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아담과 하와가 다시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려면 천사가 들고 있는 불칼에 맞아 죽어야만 한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게 그리스도의 계시다. 사람들이 죽지 않으므로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의 표본을 보여주셨다. 그 속으로 들어와 예수와 함께 죽으라는 말씀이다.
교회에서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증거하지 않는다면 교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고,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되어, 나 또한 죽는 것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가 능력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 들어온 자가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된다. 세상에서 보잘 것 없이 보여도, 못박히신 예수와 연합된다면 성공한 것이다.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은 요한복음 13장에서『오늘밤 너희는 다 나를 버리리라』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설교를 듣고 난 후에『이제야 주가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나이다』라고 하니, 예수님이『너희가 나를 믿는다고? 너희는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하신 말씀이다. 은혜를 받아서 믿는 믿음은 은혜가 떨어지면 다 예수를 버리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요나의 표적외에는 보여줄게 없다고 하셨다. 요나의 표적은 삼일 동안의 죽음과 부활을 나타내신다. 참 믿음은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은 예수와 연합한 자이고, 내가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 뿐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어린양을 죽인 자가 나라는 것을 깨닫는 자가 회개하는 자다. 회개는 자기부인을 통해서 예수와 함께 죽는 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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