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1-13절)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당시에 높은 위치의 랍비였으며, 예수는 30대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가 밤에 몰래 예수를 찾아와『랍비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예수가 하나님에게로 부터 왔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랍비로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는 니고데모에게『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육체의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에게로부터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육체가 죽어서, 환생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비록 육체가 살아있지만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다. 그래서 오늘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마음의 상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마음이 아니라,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 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영의 몸은 혈통으로 난 것이 아니다. 육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지 않으나, 영의 몸이 있는 것이다.
영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에서는 죽어있지만, 다시 영의 몸으로 태어날 때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영이 육에 있는 것은 그물에 갇혀 있는 것이다. 영은 영의 몸을 입어야만 한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데, 물은 육의 몸이 죽었음을 의미한다. 노아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물에 빠져 죽었을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자라는 것을 믿고, 성령으로 영의 몸이 태어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육은 마치 나무에 접붙이기를 해서, 이전의 가지는 붙어있기는 하지만 죽어있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이 세상의 육체가 있음에도 다시 태어나라는 것인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이 땅에서 다시 태어난 자를 통해서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육체 속에 있는 수많은 기억들이 현존하지만, 하나님 말씀 앞에서 이를 부정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싸워이겨야 한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하며, 깨어 있어야만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의식이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의 기억 속에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의 몸에 있을 것인가? 날마다 십자가를 부여잡지 않으면 넘어질 것이다.
새로 다시 태어난 영의 몸은 성령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요한1서 3장 9절과 5장 18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탄이 접근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래서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못박은 이 현실적인 육을 위해서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육의 생각이 영의 생각을 끊임없이 차단하려고 사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그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미디어일 것이다. 사탄은 끊임없이 미디어를 통해서 혈통으로 육정으로 묶이도록 유도한다. 다시 태어난 거듭난 자는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가짜 복음이 성행하고 있다. 예수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거나, 예수를 영접하면 그리스도가 영접하는 자 안에 들어온다는 식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혈통으로 이루어진 곳에서는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간에 불화가 먼저 일어난다. 마태복음 10장 35-39절에서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하나님 나라는 혈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귀절을 이용, 혈통의 분쟁을 통해 기독교인들을 넘어뜨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식이 기독교인 아버지를 고발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독재국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혈통으로 종교 분쟁이 일어나지만, 이로 인해서, 기독교인들은 고발당하지, 고발하는 자는 없다. 중세 때나 그런 일이 있었지만, 오늘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가족간에 기독인들을 공격하는 패턴은 우상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우상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서 기독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이 섬기는 모든 것이 우상이다. 우상을 섬기는 자는 죽어 있는 자다. 우상을 섬기는 자는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이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세상 풍속을 따르는 자들은 사탄의 자식들이다. 세상 풍속을 따르는 자들에 대해서, 에베소서 2장 3절에서 말한다.『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세상 풍속을 따르는 것이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다. 육체가 원하는 것을 따르는 자들은 진노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회개하여, 다시 영의 몸으로 태어난 자는 영이 원하는 것을 따른다. 자신이 진노의 자녀인 것을 깨닫는 자가 회개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생활을 해도, 여전히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다. 교회 생활하면서, 육이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간다면 진노의 자녀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육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해야만 한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