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요한복음 3장 17 - 36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3장 16절에서 언급하였다.『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가 믿는 믿음이다. 아무나 예수를 믿는다고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받은 자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자이기 때문이다. 물에서 옛사람이 죽고, 하늘로부터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남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축복이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비밀이다. 

『세례 요한이 헤롯왕에게 체포되기 전이었으니 그의 사역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아직 완료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고, 그의 메시지를 경청하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께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요한의 제자들은 이런 현상이 생겨나자 적잖이 당황스러워 했다. 요한은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영적 지도자였다. 그의 메시지는 유대사회의 커다란 울림이 되었고 사람들은 의 메시지를 깊이 새겨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세례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했다. 그런데 그러한 그를 찾던 자들이 예수에게로 옮겨가고 있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즉각 이 사실을 스승에게 알렸다.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전혀 뜻밖의 대답을 내놓는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제사장의 아들이었던 요한은 얼마든지 안정과 존경 속에서 살 수 있었지만 그 길을 버리고 광야로 갔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도 그는 사람들의 존경과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의 존경이나 대중의 인기가 아니었다. 요한은 사람들의 존경이나 대중의 인기라는 자기의 의에 빠지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자신이 메시야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로 오신 그분의 길을 닦는 길잡이였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한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어도, 심지어 자신이 쇠하여질지라도 진정한 주인공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온전히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요한의 목적은 자기 자신의 번영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로마서 2장 16절『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바울이 복음이라 말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이다. 사도행전 17장 30-31절에서도『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북돋워 주는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한다.『세상의 모든 것은 소멸되고 바뀌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고 말한다. 복음은 사랑을 전하는 것인 것인가 아니면 심판을 전하는 것인가? 누가 중심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인간 중심은 늘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은 죄인을 바라보는 심판자이시다. 그 중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생각하는 자는 미혹에 빠진 자다. 

사도바울이 17장에서 말한 곳은 그리스 아테네, 아레오바고 라고 하는 곳이며 종교재판을 하는 장소였다. 하나님이 온 우주와 땅을 창조했다고 바울은 설교한다. 그런데 설교의 마지막에『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고, 생명과 호흡을 주셨지만 알지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지만 이제는 어느 곳이나 모든 사람에게 명령하여 회개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는『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 말은 회개한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는『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하나님이 계시의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시기 전에는 율법 아래 갇혔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믿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회개하지 않은 자의 믿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는 자의 믿음이다. 병 고치는 믿음, 귀신 쫒는 믿음은 어려운 환경을 해결하는 믿음이지『변화되는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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