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4장 43-48절)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님 일행이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는 여정 중에 생긴 일로 요한복음이 전하는 일곱개의 표적 중에서 두 번째 표적으로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신 이야기다. 갈릴리에 이르자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이유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번째 이적의 소식은 갈릴리 지역에 사람들의 입에 입을 타고 전해졌을 것이다. 목격하지 않고는 믿지 못할 이 소식에 사람들은 의심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한 청년이 서슬이 퍼렇게 성전 앞에 늘비하게 있었던 장사꾼들을 나무라며 상을 엎어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물을 구입할 때마다 폭리를 취하는 이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한 청년의 이 용기 있는 행동에 속으로 갈채를 보냈다. 바로 그 청년이 가나 혼인잔치의 이적을 행한 예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했을 것이고, 이후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머물면서 말씀을 전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그 청년 예수가 갈릴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갈릴리 사람들은 나와서 예수님을 환대했다. 환대를 받은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나에 도착했다.
가나에서 약30km 떨어진 가버나움에 거주하고 있는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에 걸렸다.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다녀보았지만 아들의 병은 점점 악화되어갔다. 그러던 중 가나에서 예수라는 사람이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예수가 자기가 살고 있는 가버나움을 다녀갔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때만 해도 그런가보다 하고 지냈는데, 유월절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에서 전해오는 소식은 그로 하여금 한 가닥 희망을 갖게 했다. 예수님이 가나에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종들을 시키지 않고 자신이 가나로 달려갔다. 한 걸음에 가나에 도착한 그는 예수님을 찾아가서, 예수님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예수님의 대답은 냉담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이 말을 들은 왕의 신하는 처음에 머뭇거렸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주여 라는 호칭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대방을 올리는 존칭이다. 당시 최고위층의 신분인 왕의 신하가 일개 시골 청년에게 선생님, 내 아이가 죽어가고 있느니 제발 내려와서 고쳐주십시오 라고 하며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그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하셨다. 『살아있다』로 해석된 헬라어『짜오』는 병든 자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예수님의 대답에 왕의 신하는 더 이상 조르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로 했다. 서둘러 집을 향해 내려갔다.
그 때 자기 집에 있어야 할 종들이 허겁지겁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허겁지겁 달려오던 종들은 주인을 만나자 숨을 헐떡이며『주인님, 주인님 아들이 살아났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왕의 신하는 하인들에게 물었다. 『내 아들이 언제부터 낮기 시작했느냐?』종들이 대답하되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왕의 신하는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있다고 한 그 때와 일치함을 깨달았다. 이후 왕의 신하는 물론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고 증거한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주춧돌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가버나움에 내려와서 아들을 살려달라는 아버지의 간청에 예수님은 왕의 신하와 함께 내려가서 직접 그의 눈앞에서 아들의 병을 고쳐주실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가나에서 가버나움까지 거리가 너무 멀거나 내려가기 귀찮아서가 아니라, 왕의 신하에게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시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그들이 눈앞에서 펼쳐진 그 이적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이 믿음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셨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보이는 것에만 의지한 믿음은 그 뿌리가 흔들리기 쉽다고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왕의 신하의 간청에도 불구하고『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왕의 신하와 함께 내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네 아들이 나앗다』는 말씀을 하심으로 그의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주셨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을 때, 30km 떨어진 가버나움 집에서 죽어가던 아들이 살아나는 이적이 펼쳐졌다. 결과적으로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목격했지만, 그 이적은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은 결과로 파생된 것이었다. 즉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아들을 살려낸 것을 목격하고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자체를 믿었을 때 자신의 아들이 살아나는 이적을 경험했고, 이를 통해 그와 그 온 집안은 믿었다.
왕의 신하는 왕의 신하의 신분이 아니라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신분으로 자신의 사회적 신분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없는 청년 예수에게 매달렸다. 인간의 자식을 향한 사랑이 이러할 진데, 어찌 성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성도의 간구와 기도를 외면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성령이시다. 성도가 기도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영의 구원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성도들의 기도가 이웃의 영을 살리는 두번째의 표적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에 바탕을 두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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