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요한복음 4장 49-53절)『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아들이 병이 들린 왕의 신하는 그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갔더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시각에 병이 나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온 집안이 다 믿게 되었다. 베드로도 장모의 열병이 떠나갔다. 그래서 다 믿게 되었다. 이런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은 아니다. 요한복음 13장 36-37절에서『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대단한 고백이다. 베드로는 풍랑 위를 걸었고, 예수님이 모세, 엘리야와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이 믿음도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다. 요한복음 13장 38절이 적용되는 것이다.『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예수님이 설교하셨다. 이 설교는 15-16장까지 이어진다. 16장 30절에서는 제자들이『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31-32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믿는다고?)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라고 하셨다. 제자들의 말과 예수님의 반응은 정 반대다.
믿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믿음은 행동을 수반한다. 그러나 입으로만 믿는 것은 위약이라는 말이다.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바로『자기(혼)』라는 존재다. 자기(혼)는 행동하지 않더라도 어떤 사실을 믿게된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변화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변화된 믿음은 그 믿음이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변화가 행동으로 가게한다. 변화는 서서히 바뀌는 화학적 변화와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전혀 다른 존재로 바뀌는 물리적인 것과 같음을 말한다. 혼에서 영으로 바뀌는 것이다. 혼은 죽고 영이 살아나야만 하는 것이다. 자기(혼)가 예수를 믿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혼이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구원이 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한복음 6장 63절)
혼이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 회개요, 이 회개는 구원받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다른 것을 선택한다.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어린양의 고기를 먹어야만 죽지 않는 것을 잘 알고있다. 히브리 백성이 홍해바다를 건너고, 홍해바다에서 바로왕의 군대가 다 죽었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구원의 절대적인 순종이 된다.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 순종은 자기의 생각을 죽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광야에서 히브리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가 기도했을 때 땅이 갈라져서, 고라 자손과 250여명이 불 속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너희가 향을 피우라 나도 피울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들은 불에 타 죽어버렸다. 이후에 또 길이 험하다고 하나님을 원망했다. 주님이 불뱀을 보내어 죽게 하셨다. 이런 상황을 지켜 본 히브리인들이 왜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한 것인가? 인간은 이런 상황을 지켜본다고 바뀌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수기나 복음서나 다 같은 의미를 말하고 있다.『인간은 다 죽을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이 세상에 아들을 보내시는데, 인간은 이사야 53장에서『너희는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12장 39-40절에서『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라고 하셨다.
『믿지못한 것』이라고 말한 이『믿음』은 왕의 신하처럼『와서 고쳐주소서』라고 하는 믿음이 아니라, 요단강을 들어가는 믿음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이런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맹세를 하셨다.『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애굽을 나왔던 모든 백성들은 아무도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광야에서 옛사람은 모두 죽어야만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옛사람이 오늘날 바로 육으로 비롯된 자기(혼)라는 존재다. 예수님이 내 대신 죽어서 그것을 믿으므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함께 십자가에서 죽을 때 예수의 피로 죄 용서 받는 일이 일어난다. 피는 인간의 죄를 해결한다. 그러나 옛사람(자아:혼)은 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
피에 앞서 어린양의 죽은 고기가 먼저 적용되어야만 역사가 일어난다. 어린양의 고기는 피가 다 빠져, 죽은 고기가 되어 불에 타 버리는 것이다. 피 속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피가 적용되기 전에 예수님의 죽으심이 먼저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피가 적용되기 전에 예수님의 죽으심과의 연합이 먼저 적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내가 죽은 자가 되므로, 피가 적용된다는 말씀이다.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죽는 것이 회개다. 회개는 세상 죄를 고백하는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내가 회개하고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야 할 존재이므로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 예수 안에 있으면 구원받는다. 사람들은『구원이 왜 이렇게 복잡해, 그냥 믿으면 되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십자가의 말씀에 이르지 못하면 자기의 믿음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예수의 믿음은『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부활시키는 믿음』이다. 자기를 포기하고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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