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한복음 8장 33-34절)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이 예수께 나왔다. 그런데 예수님이『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하셨다. 예수를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 거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유대인들이 믿어서 나온 그런 『유대인의 믿음』과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제자되는 믿음』은 서로 다르다.『진리가 자유케하는 믿음』은 제자되는 믿음이다.『진리가 자유케하는 믿음』을 가질 때 구원받는다. 

유대인들이 말하기를『종이 된 적이 없는데, 자유하라고 하느냐』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라』고 하셨다. 오늘날 『예수믿으세요, 예수믿으면 모든 죄가 예수의 피로 용서받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은『죄의 종인가? 아니면 죄로부터 벗어났는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죄를 씻기』를 원하고 예수님은『사람들이 죄의 종으로 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인간들의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와 연합된 자에게 죄의 종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 죄를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 사람들은 죄로 부터 벗어나지 않고, 오직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으려고만 하는 것이다. 죄로 부터 벗어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구원은 죄 용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옛사람(혼)이 죽는 것에 있다. 옛사람이 죽어야만, 하나님이 죽으신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것 처럼 부활 생명이 들어와서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다. 이게 거듭남이다. 거듭남이 없다면 모든 교리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죄를 씻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가?『자기』라는 혼이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매일 죄를 짓고 죄를 용서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혼은 죄의 뿌리다. 혼은 죄를 일으키게 만드는 악이요 세상을 사랑하는 옛사람이다. 혼에는 사악한 탐욕의 우상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이 죽지 않으면 날마다 죄를 범하는 것이다. 혼은 육이 죽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혼이 죽는 것이다. 자기 부인이 혼의 죽음이다. 중요한 것은 주님 보시기에『믿는다고 하는 자』가 어떠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알라고 하신다. 죄의 종인『혼적 존재』인지, 아니면 예수의 제자가 되는『영적 존재』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야만 한다. 『주님의 말씀 안』이라는 말은『주님과 제자되는 관계』를 말한다. 관계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진리를 알 수 없으며, 진리를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진리를 경험하게 되면『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한다』는 말이다. 진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회개는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나』라는 주인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뀐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스승이 되고, 우리는 그의 제자가 된다. 그렇게 되면 진리를 경험하게 되고, 죄로부터 자유케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사람이 어떻게 회개하는가? 주님의 성령이 도와 주셔야만 완전한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가?』이 말은 두 가지를 섞어서 성경에 없는 말을 마귀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을 붙잡고 있다면 회개는 불가능한 것이다. 성경에『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원수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마귀에 붙잡힌 많은 사람들이『육신의 생각은 스스로 회개가 될 수 없다』고 적당히 섞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거하고 제자가 되는 것은 누가하는가? 성령이 하는가 아니면 사람이 하는가? 사람이 할 것이다. 사람의 누가하는가? 혼이 하는가 아니면 영이 하는가? 살아난 영이 하게된다. 회개하여 거듭나면 영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럼 회개는 누가하는가? 내가 하는 것이다. 혼이 죽는 것이 회개이기 때문이다. 흑암이 하나님의 빛을 보고『자신이 어둠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흑암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내가 하나님 앞에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이것이 큰 비밀이다. 

나는 어떤 상태인가?『주님 나는 누구입니까?』라고 기도해야만 한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8장 41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즉 너희는『스스로 고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성경적으로 맞는 고백을 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8장 42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왔으면 예수님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죄인들은 스스로 의를 얻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긍휼을 바라는 것이다.『나는 스스로 할 수 없는 존재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 회개의 시작이다. 빛 앞에서 흑암을 깨닫는 것처럼, 회개를 통해서 주님이 보시기에『우리의 상태』를 깨달아야만 한다. 예수님은『십자가에서 연합되는 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셨다. 그래서 연합되는 자는 전부를 주님께 드려야만 한다. 이렇게 말한다면 많은 교회 사람들은 떠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부를 드리지 않으면서 주님으로 부터 은혜만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회개없는 믿음이 팽배한 이유를 깨달을 것이다. 

성경에서 베드로를 통해서 알려주신다. 3년간 온갖 기적과 놀라운 경험을 했지만,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다. 베드로의 믿음은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였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믿는 믿음이 되어야만 한다. 믿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태양으로 부터 빛이 와야 물체가 빛을 낼 수 있는 것 처럼, 주님으로부터 믿음이 와야 주님의 말씀에 거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믿음이 오는 자는 회개하고 거듭난 자다. 태양으로 부터 빛이 오는데도 빛을 볼 수 없다면, 소경이요 흑암에 있는 자다. 영적으로 이런 자를 마귀에게 속한 자라고 한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의 계시록에서『대가를 지불하라』는 말이다.『안약을 사서 발라』라는 것이다. 회개는『자기를 드리는』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많은 교회에서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말로만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자기 부인한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것이다. 성경에 믿음은 선물이지만 회개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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