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한복음 7장 14-36절)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초막절의 중간쯤 되자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권위와 정체성에 대해 비아냥 거리고 불신하는 유대인들에게 역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요한복음 5장 18절에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들과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 이유가 바로 안식일에 병든자를 고친 것과 동시에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동등하게 여겨 신성모독을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과 사역에 놀람과 동시에 편견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이 비아냥적인 태도로 질문을 던진다.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예수님은 응답하셨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예수님은 본인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능함을 들어내려 하지 않았다.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드러내셨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5장 이후 점진적으로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깊은 골이 깊어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든 자들을 고치셨고, 이로 인해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보내신 이가 하나님 이라며 자신을 소개 했다. 신성모독죄까지 가중된 것이다. 안식일도 지키지 않고, 신성모독까지 하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은 처벌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향해『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유대인들은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한다. 8째 날이 평일이든 안식일이든 상관없었다. 안식일을 어기면서 까지도 남자아이의 작은 부분을 칼로 도려낸다. 이를 통해 구별된 선민인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임을 선포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지는 안식일에도 태어난 지 8번째 날이 되면 유대 남자아이들은 몸의 작은 부분을 칼로 도려내고 구원받은 백성으로 선포하며 함께 기뻐하면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을 아파 누워 있던 이가 치유 받고 자리를 들고 걸어갔는데 함께 기뻐해 주지 못하느냐 라는 것이다. 도리어 안식일에 치유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범법자로 몰아 죽이려 하느냐며 도리어 꾸짖으신 것이다. 그리고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무지는 인류 역사와 함께 동행하고 있다. 인류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았던 시기는 단 한 번도 없거나, 알아도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하나님께서 자신 스스로를 감추셨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마다 자신을 모든 인류에게 나타내셨다. 신명기7장 9 절에서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호세아6장 3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늘 하나님을 떠나고 반역하며, 배신했다. 출애굽기 32장 8절에서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저지른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대인을 비롯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당시의 상황도 예수님과 예수님 주변의 많은 무리 사이에 깊은 간격이 있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또한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님의 출신과 성장배경을 이야기하며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의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유대 지도자들을 보며 예루살렘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도자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듯이 말한다. 공권력으로 예수를 잡아들이지 않는 당국에 의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 주민들은 예수님이 물리적으로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과 깊이 있는 만남까지는 가지 못했다. 오히려 예수님에 대한 피상적인 앎은 예수님에 대한 본질적인 앎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침묵하고 오인하는 종교지도자들과 무리들 앞에서, 예수님의 태도는 창조 때로부터 같은 맥락으로 가르치시며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며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시면서 더 중요한 본질로 종교지도자들과 무리들을 이끌어주심을 보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의 영적 무지를 꼬집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만일 참되시며 바른 계시를 주시는 분으로 알았다면 자신을 모를 리 없다는 말씀을 하신다.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이며,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음에도 단지 육체적인 사실만 알았다면 영적인 무지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선민임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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