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1장 17-26절)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가 말하기를『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하면 무엇이든지 다 주실 것을 믿는다』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다시 살리라』라고 했는데, 마르다는『다시 사는 것』을 현재적이 아닌, 육이 죽은 후 미래 마지막 날 부활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현재적이다. 죄에 대해서도『언젠가 내 죄가 사하심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현재적인 죄의 사하심이다. 믿음은 지금이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나는 항상 부활이요 생명이야, 나를 믿는 자는 영이 죽었었지만 살아나고, 영이 살아나면 하늘로 부터 오는 믿음의 선물을 받아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을 육의 관점에서 보면『나를 믿는 자는 육이 죽지만 언젠가 살아나고, 육이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문장의 구조가 대단히 어색하다. 성경의 말씀은 영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육의 방향으로 돌리고 있다.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믿음이 중요하다. 주님이『지금 무엇을 말씀하시는가』가 중요하다. 요한복음 5장 24-25절에서『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이 말씀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현재적인 말씀이다.『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지금 들을 때 죽었던 영이 살아난다』는 말이다.
미래 심판을 받기위해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듣고 깨어나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듣는 자가 살아나는 것이 구원이다. 현재 하나님 아들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영이 살아난다는 말이다. 5장 26절에서『생명을 주신다』고 하셨다. 이것이 일어나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고, 교회생활 열심히 해도『영이 살아나지 않으면』구원받지 못한다. 이것은 회개하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주님이 믿음의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 이 믿음은『지금 영이 살아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5장 28-29절에서는『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이 말씀은 현재적인 말씀이 아니라 육이 죽었던 모든 자들이 모두 미래에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왕으로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때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권능에 의해서 다 살아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활은 5장 24-25절의 현재적 말씀이고, 마르다가 말한 것이 바로 28-29절에서 말하는 미래의 부활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살아난다. 성경을 아무리 암송을 잘 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영이 살아나지 못한다. 히브리서 4장 12-13절에서『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혼과 영의 비유가 관절과 골수다. 혼은 관절과 같은 것이다. 혼은 인간의 중심에 있는 영과 육체를 연결하는 관절과 같은 것이다. 영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에 뼈 속에 있는 골수와 같다.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는 곳이 영이다. 하나님은『내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지적으로 반응하는 것과 다르다. 지적으로 반응하는 곳은 혼이다. 혼에 반응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이기게 할 수 없다.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게 할 수도 없다. 핵심은 영이다.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는 곳이 영이 될 때, 죄를 이길 수 있으며,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게 된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이게 거듭남이다. 성경 지식으로는 거듭날 수 없다. 잠언에 보면 지식(knowledge), 총명(understanding), 지혜(withdom)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이 총명이 되고, 총명이 지혜가 되어야 한다. 성전 마당, 성소, 지성소와 같은 이치다. 하나님 말씀이 생명의 지혜가 될 때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전도서에서는 지혜의 근본이『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회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으로 기도하며 순종하며, 간절히 찾을 때 마음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 말씀 때문에 낮아지고 겸손해 지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의 역사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 말씀 앞에 설 때 목마른 사람처럼 갈급해지고,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된다.『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마음의 영역에서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성경은 혼과 영을 찔러 쪼갠다고 했다. 혼은 자기 중심적이다. 혼적인 사람은 예수를 믿는 것도『자기가 믿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53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하니 60절에서『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사람들이 수군거리니 예수님이 다시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영에 대해서 말을 하니까 66절에서『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지라도 떠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성경 말씀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젠가 떠나가버린다. 기준이『자기』다. 이를 혼적인 존재라고 한다. 자신은 주님과 함께 있다고 하지만 혼적인 존재는 영에 대한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으로 혼과 영을 쪼개어야만, 영이 살아난다. 요한복음은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영에 대한 말씀을 하는데, 회개하지 않은 자는 육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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