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요한복음 6장 61-64절)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사람들은 영과 혼과 육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흙은 사람의 육체가 흙으로 지어졌으므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9절에서『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우리말 생령은 영어로『살아있는 생명체(niv), 살아있는 혼(kjv)』으로 번역되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히브리어로『네피쉬하이』라고 한다. 그런데, 헬라어로는 푸쉬케로 번역된다. 사람이 죽으면, 육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하나님이 코에 불어넣으신 것이 영이다. 생기는 히브리어로 네샤마(호흡)라는 단어다. 누가복음 8장 에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이 죽은 소녀를 살리는 내용이 나온다. 8장 55절에서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는 것과 그 영이 돌아오는 것은 같은 것이다. 헬라어로 푸뉴마가 돌아왔다. 푸뉴마가 돌아와서 푸쉬케가 되었다. 영(푸뉴마)이 흙에 들어가면 푸쉬케(네피쉬하이)가 된다. 즉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서 영혼, 영, 혼이라고 혼란스럽게 번역되어 있다. 우리말 번역이 한자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 이렇게 번역이 된 것같이 보인다.
그래서 정확하게 헬라어로 정의하자면 영과 흙이 만나면『살아있는 생명체(혼)』가 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죽으면 영과 육이 분리되어 각자의 길로 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혼)는 영과 흙의 결합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영과 혼을 분리한다는 것은 혼에서 영이 빠져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혼이라는 실체는 사라지고 흙인 육만 남는 것이다. 따라서 영과 혼의 분리는 죽음을 나타내지만, 분리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2-4절에서『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장막이라는 말은 집이나 몸의 형체를 말한다. 몸의 형체는 영을 담고 있는 몸을 말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도『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그래서 영의 몸은 영을 담는 몸을 의미한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우리의 장막 집은 육체를 의미한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영의 몸을 의미한다. 만일 하늘로부터 오는 집인 영의 몸을 입지 못하면, 벗은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영이 육체에 있을 때는 하나님과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이 영의 몸을 입을 줄 알고 있으므로 담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있던 영이 물질세계에 이주해서 주와 따로 있지만, 영의 몸을 입어 주와 함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의 몸으로 거듭나는 자는 주와 함께 있는 것이다. 원래 두고 온 하나님 나라의 장막을 되돌려 받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서『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이 나그네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레위기 25장 23절에서『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히브리서 11장 14-16절에서도 나그네임을 설명하고 있다.『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본향으로 돌아가는 주체는 영이다. 흙으로 된 인간이 아니라 생명체인 인간 속에 있는 영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처럼, 하나님을 떠나온 자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영이 흙에 갇혀있으므로 영이 죽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돌아가기 위해서는 벌거벗으면 안된다. 영의 옷을 입어야만 한다. 예복을 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왕의 혼인잔치에서도 비유의 말씀으로 예복을 말씀하셨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말씀하셨다. 영의 옷이 바로 영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옷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마다 영의 몸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영의 몸을 입기 위해서는 육의 몸(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죽은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을 가둔 육의 몸이 죽어야만 한다. 영이 죽은 상태를 옥에 갇힌 자, 눈먼 자 등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갇힌 자를 풀어주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하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고, 흑암에 있는 자를 빛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이런 은혜를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이런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맹세를 하셨다.『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애굽을 나왔던 모든 백성들은 아무도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광야에서 옛사람은 모두 죽어야만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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