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요한복음 14장 13-14절)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교회 사람들은 사람들은 이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해서 기도하면 다 들어주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기도문에서 하늘에서 이룬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지기 위한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이룬 뜻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요한복음 6장 40절에『아들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라 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는『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하나님의 뜻은『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마다 구원을 이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 뜻이『창세 전에 이미 세워졌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다 구원하시려는 뜻을 언제 세우셨는가? 창세 전이라는 말은 영원이라는 말이다. 영원이라는 의미를 인간들은『끝없는 시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생각은 이것을 벗어나지를 못한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 안에서는 영원을 이해할 수 없게된다. 왜냐하면 영의 세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세계는 영원의 세계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 세계를 바탕으로 영원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물질세계는 영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서 물질세계를 창조하신 것이다.
예수님은『세상에, 흑암에 갇힌 자를 구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흑암 가운데 있는 인간들에게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비춰진 것은 흑암 가운데 예수님이 오신 것을 말한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흑암은 세상의 흑암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세상이 흑암인 것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을 대적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깨닫고 보니, 사탄에 속아서 흑암에 갇혀버린 것이 괴롭고, 원통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사탄을 고소라도 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신원의 기도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1-8절에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성도들은 사탄에 대해서 원한을 가지고 있다. 날마다 사탄을 고소해야만 한다. 원한을 풀어달라고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 사탄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기도해야만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러한 뜻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오직 세상의 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요한복음 6장 24절에서『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왜『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을 구원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영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신다.
요한복음 5장 44절『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사람들에게 영광을 구한다면,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에게 자랑한다면, 하나님으로 부터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영광을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취하려고 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영광을 취하려고 하지 않는데, 어떻게 나를 믿느냐』라는 말이다. 오늘날 지적으로 성경을 알고 깨달았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취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만 유대인의 사회에서 출회를 당할까봐 감히 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만이 참 믿음이다. 이렇게 되지 못하면 지적인 동의일 뿐이다. 연합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인하고 예수 안에 있어야만 하나가 된다. 나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이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옛뱀에 물린 자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위하여 사는 자가 참 신자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자는 참 신앙인이 아니다. 회개하여 허물과 죄로 죽은 자만 이것을 깨닫는다. 내 속에 하나님께 대하여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만 십자가 앞에 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베드로처럼 결국 십자가 앞에서 다 예수를 버리게 된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지 않는다면 베드로처럼, 니고데모처럼 예수를 버리게 된다. 그래서 전적 타락한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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