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요한복음 21장 7-14절)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물이 찢어지지 않고, 건져 올린 물고기가 153마리였다. 153마리는 오른편에 있던 물고기였다. 이들은 영생을 얻은 자들이다. 물고기는 예수를 상징한다. 100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사람들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이삭(그리스도를 예표)을 얻었다. 50은 희년을 의미한다. 안식년이 일곱번 지나서 희년이 되어, 매여있던 것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유함을 주신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하여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3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17장 21절에서 이해할 수 있다.『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3은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153마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도록 전하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21장 12-13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떡은 예수님이 이루신 생명의 떡이다. 생선은 구원받는 자들이다. 먹으라는 것은『믿는다』라는 의미가 있다. 무엇을 믿으라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들을 대속하기 위해 살이 찢기고, 피를 흘렸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전라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찾아오셨다. 뿐만 아니라 디베랴 호숫가에서 주님은 자신을 배반했던 제자들을 위해 조반을 준비해 놓고 그들을 식탁으로 초대하셨다. 함께 아침식사를 드시고 난 후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세 차례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하나님을 사랑을 하느냐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이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다시 부르기 위한 사랑이시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있었다. 베드로의 답변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바로 바로 다시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죽어있는 영을 살려라는 것이다. 예수님께 자신의 사명을 확인한 베드로는 곁에 있던 다른 제자를 보고 그가 어찌될지를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각자에게는 각자의 사명이 있음을 말씀하시며, 다른 사람을 상관하지 말고『너는 나를 따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성도의 맡은 사명은 죽어있는 영을 살리는 일이다. 이 일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세우셨던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십자가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자들은 하나님이 영을 얼마나 살리기를 원하시는지를 깨닫게 된다. 사탄의 미혹을 따라 이 세상에 왔지만,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깨달은 자가 이웃의 죽어있는 영을 살려내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과 비전을 세우고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사명을 받은 자들이다.『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제자들은 예수가 왕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고난을 당하여 죽고 삼일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에 관심이 없었다. 오직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향유를 예수님 머리 위에 부은 한 여인만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4장 3-4절에서『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라고 비난하였다. 예수님은 좋은 일(장례준비)을 했다고 칭찬하며, 마가복음 14장 9절에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장례에 참여하는 것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보다 먼저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이게 복음이다. 로마서 6장 4절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장례를 준비하는 것을 넘어서서, 함께 무덤에 들어가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함께 장사되지 않으면 예수와 상관없는 자가 된다. 장례식에 참석한 것만 해도 죽은 자에게는 고마운 일인데, 죽은 자와 함께 장사되라니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과거에 순장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보면『순장은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 특정한 인물을 매장할 때 함께 묻는 것으로, 왕이나 귀족 같은 특권계급이 죽었을 때 신하나 시종 등을 강제 또는 스스로 죽게 하여 묻었다』고 한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함께 묻혀야 할 것은 살아있는 육이 아니라, 탐욕의 속사람(옛사람)을 말한다.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도 중요하지만, 먼저 탐욕인 옛사람의 죽음을 먼저 전하지 않으면 우선순위가 잘못되는 것이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교회와 선교사들이 활동하지만, 옛사람의 죽음을 먼저 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직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가난한 자를 먼저 돕고, 그래서 그것이 복음의 전부인양 옛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옛사람의 죽음이 선행되지 않으면 모두가 99세까지의 아브람이 되며, 가나안 땅 앞에서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자가 되고, 십자가 앞에서 도망간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옛사람의 장사를 말하지 않는다면 마태복음 23장 15절에서 말하는 자가 될 것이다.『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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