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야고보서 1장 1-12절)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험이 있다. 주기도문에도 있다. 주님을 바라는 자들은 시험 속에서 만들어진다. 시험 속에서 분별의 능력이 생긴다. 분별에 대해서, 로마서 12장에서는『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분별하도록 한다』는 말은『분별의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인간이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분별되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변화를 받아야만 되는 것이다. 변화를 받아 새롭게 되는 것이다. 분별은 새롭게 되는 것과 연계되어 있다. 새롭게 되는 만큼 분별되는 것이다.『분별하도록 하라』는 헬라어로 도키마조 (δοκιμάζω)라는 단어인데, 이것의 형용사(도키마스)가 바로 야고보서 1장 12절에서 나오는『시련을 견디는』이다. 분별하기 위해서는 시험 속에서 옳다 인정하심을 받는 것이다. 

『시험을 만나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다. 이 시험은 믿음의 시험이다. 하나님을 믿기에 시험이 오는 것이다. 시험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찾으신다. 주님은 시험 속에서도 계신다. 믿음의 시험은 인내를 만드는데, 그 이유가 1장 4절에서『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그래서 시험 속에서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야고보서 1장 5절에서『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고 했다. 시험 속에서 구하는 것은 인내이지만, 그 보다 먼저『기도하고 구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인내를 잃지 않을 때, 우리가 드린 기도가 찬양이 된다는 것이다. 주님이 그럴 때 지혜를 얻게 하신다. 그래서 시험을 기쁘게 여기게 되고, 인내로 견디게 되며,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주님께 산 제물로 드리게 된다. 

이 이야기가 요셉의 이야기다. 열명의 형들이 자기를 묶어서 죽이려고 하다가 다른 나라에 팔아버렸다. 요셉은 차꼬에 묶여서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다.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갔는데, 주님이 함께 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요셉이 구한 것은 주님이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지는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때는 집안에서 누리기만 했지만, 이제는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지게 된 것이다. 보디발의 집에서 주님의 마음에 들었을 때 두번째 시험이 온다.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오는 시험이다. 그렇지만 그는 시험에서 통과한다. 그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옷을 집어 던졌다. 상황은 더 악화된다. 종살이가 아니라 옥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된 몸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시험에 통과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는 주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되는 것이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옷을 벗어 집어 던진 것은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흰옷을 입은 날이기도 한 것이다. 생각이 새로워져서 변화를 받은 인생이 된 것이다. 

술관원과 떡관원이 꿈을 꾸었는데, 주의 뜻이 분별되었다. 죄수의 꿈을 분별한 요셉에게 왕의 꿈을 분별하게 하셨다. 이런 과정 속에서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험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여기게 되고, 하나님께 구하게 되고, 주님의 지혜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요셉이 꿈을 해석하는 것이 바로 지혜를 얻는 것이다. 요셉은 감옥에서 지혜를 얻게 되고, 바로왕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된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생명의 면류관이 감추어져 있다. 이것이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분별이 옳다라고 인정함을 받는 것이다. (도키마스) 

『분별하다』는 명사가 있다. 로마서 5장 3절에서『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연단』이라는 단어가 도키마조의 명사인 도키메 (δοκιμή)라는 단어다. 인내, 연단, 소망의 세가지 중에서 연단이라는 단어를 여러가지 형태로 번역되었다. 시험 속에서 인내할 때, 요셉을 종살이 옥살이에서 만드신 것처럼 주님이 만드신다. 그래서 우리의 성품이 바뀌게 된다. 시험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얻게 된다. 인내로 인해 생기는 성품은 온유다. 온유하다는 말이 헬라어로『조절된 성품』을 말한다. 

신명기 8장 2절에서『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시험은 아무나 하시지 않는다. 주님은 광야에서 낮추신다. 세상에서 험한 고생을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낮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자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시험에 들수록 예배해야만 하는 이유다.『예배한다』는 것이『엎드린다, 낮춘다』는 뜻이 된다. 주님이 낮추셔서 시험하신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집에서 사랑받는 요셉을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서 낮추게 하시고, 보디발의 아내를 통하여 시험하게 하셨다. 시험을 통과하므로 감옥에 가게된다. 

요셉은 감옥에서 복이 숨겨져 있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감옥에서『내 인생은 끝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감옥에서는 십자가가 열쇠다. 우리 판단, 지식이 모두 다 죽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이 주님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바로왕의 신하들이 감옥에 들어오는 것이다. 요셉이 총리가 될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주님은 시험 끝에 마침내 요셉에게 복을 주셨다.『마침내』가 내 판단, 내 생각, 내 계획이라는 것의 끝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시험으로 인하여 나의 계획, 판단, 생각이 모두 끝나는 순간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내 뜻대로 마옵시고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나이다』라는 기도가 나오는 것이다. 처음에는『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이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말할 것이다. 주님을 향하여 가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처럼 기도가 바뀌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새롭게 되어 바뀌게 되고 변화를 받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분별되는 것이다. 감옥에서 십자가의 죽음 끝에서 부활의 지혜가 시작되는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