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힙입은 믿음
(베드로후서 1장 1-2절)『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이 편지를 받는 대상은 거듭난 자들이다. 거듭난 자는 믿음을 하나님으로 부터 받는다.『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힘입어는『안에서』라는 의미를 갖는다.『성령을 힘입어』도『성령 안에서』라는 뜻이다. 그래서『그리스도의 의 안에 있는 자』는 거듭난 자를 말한다.『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무엇과 동일하다는 것인가?『우리 하나님』과 연결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보석처럼 귀한 믿음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의 서신에는『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먼저 인사말을 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를 했다. 그러나 히브리서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히브리서에서 새언약을 말한 후에 야고보서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서『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이 말은 『거듭남』을 말한다. 베드로전서 1장 2절에서는『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여기에서『편지하노니』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는 없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그 대상이다.
택하심을 입은 자는『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1장 3절에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택하심을 입은 자가 거듭난 자다. 1장 23절에서는『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요한1서에서는『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는 말이 여덟번이나 나온다.
믿음은 내가 믿기로 한 믿음과 하나님으로 받은 믿음은 다르다. 요한계시록13장 8절에서『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마지막 때, 적그리스도는 자기의 우상을 세운다.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다 죽인다고 말한다. 666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은 매매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표를 받으면 14장 10절에서『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이 글을 읽으면『내가 그 때를 당하면 절대 그 표를 받으면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자가 율법 아래 있는 자가 된다.『666을 받으면 지옥이라고 말하고 받으면 안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다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는 자는 666을 받은 자들이다. 그것은 대표적인 예가 베드로였다. 베드로가 거듭나지 않았을 때,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다. 어떤 기적을 경험하고 영생의 말씀을 배우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깨달을지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그 표를 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그 표를 받지 않는다고 요한계시록(13:8)은 말했다. 666은 마귀 자식이라는 표인 것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에서『너희들은 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했지만『아무도 안버립니다』라고 응답했다. 마찬가지로 계시록에서『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다 우상에게 절하리라』 라고 말하지만, 거듭나지 않은 자들도『우상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하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면서, 불상 앞에서 절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옛사람(죄성)이 죽어야 거듭난다고 말하지만, 죄성은 절대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거듭남도 마음의 상태로 생각한다.
회개는 마음의 상태를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주체를 버리라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는 것이 회개라는 것이다. 죄성의 죽음이 회개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악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그러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성경이 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항상 상태를 통해서 생각하고 말한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자기의 생각을 통해서 무시하는 것이다. 오늘날 죄책감은 회개가 아니라, 과거의 죄에 대한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상태를 고백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떤 곳에 머무르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이『어디있느냐』라고 물었지만, 그들은 상태를 말한다. 벗었으므로 숨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생각해야만 하는데, 자신의 상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죄악된 곳에서 나오라』고 하는데, 나오려고는 하지 않고 그 상태를 개선하려고 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엄밀히 회개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옛사람으로 머물고 싶은 것이다. 구원은 인간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인간에게 달려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믿기만하면 구원받는다』라는 식이다. 예수를 영접하면 구원받는다 라는 식이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거듭난 자를 구원하신다. 거듭난 자는 옛사람이 죽은 자가 거듭난 자다. 베드로서를 받은 사람들은 주로 갑바도기아 지하동굴에서 살았던 핍박받던 자들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에게 거듭난 자라고 말했다.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여기서『받았다』는 말은 영어로 obtain이다. 신약성경에서 네번 나온다. 사도행전 1장에서 가롯유다가 죽고, 사도를 제비뽑기 하여 맛디아가 택해지는데, 이때도 obtain이다. 누가복음 1장에서 사가랴가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제비뽑기 하여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이때도 obtain이다.
유다서 1장에서는『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성도들이란 거듭난 자를 의미한다. 오늘날은 교회에 나오면 직분이 없는 사람을 성도라고 말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믿음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가 된다. 회개하는 자에게 단번에 보배로운 믿음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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