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후서 1장 3-10절)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베드로전서가 외적인 고난과 시련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면, 베드로후서는 교회로 침투한 거짓 교사들(이단)에 대한 경고와 함께 성도들에게 영적인 성숙을 강조하고 있다. 베드로후서가 작성된 기독교 초기는 물론 그 이후에 영지주의, 몬타누스주의 등과 같은 이단 사상으로 혼란이 야기되었고, 이단들로부터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바른 지식이 필요했다. 

1장 2절에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말하고 있다. 앎이라고 표현된 헬라어 『에피그노시스』는 명확한 지식, 인식을 의미하는 단어로 일반적인 지식 또는 단순히 하나님을 인지하는 수준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명확하게 아는 지식을 뜻한다. 따라서 에피그노시스는 하나님과의 하나되는 믿음을 통해서 파생되는 지식을 의미한다. 그 지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들을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진정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참 앎이라는 것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에피그노시스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과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즉 새생명과 그리스도의 재림, 새 하늘과 땅,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처럼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신 이유는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추구하던 우리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려는 자로 변화시켜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신의 성품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자만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영이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오직 영의 몸을 입은 자만 가능하다. 영의 몸을 입으려면 반드시 육의 몸을 벗어야 한다. 육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신의 성품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영의 몸은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몸의 변화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성도는 신분이 바뀌게 된다. 세상의 사람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바뀌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했다. 

베드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바탕으로 더 하라는 것이다. 이 더하는 것은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죽노라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덕』은 그리스도의 덕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도록 하라는 것이다. 지식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의미한다. 절제는 육체적 욕망과 성적 남용에 반대되는 의미로, 당시 거짓교사들의 문란한 생활을 지적하고 있다. 인내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되리라고 소망하면서 고난과 악과 대항하여 견디어 내는 것을 가리킨다. 경건은 일상의 삶속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의미한다.  형제 우애는 가족 간의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의미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한 덕목들은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사랑으로 열매 맺는다. 

성도의 믿음은 성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이 오는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찾으신다. 아무 자격도 없지만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녀로 불러주신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와 더불어 십자가를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성도는 회개하기 전에는 정욕으로 썩어 없어져버릴 자이지만, 회개하므로 하나님께서  성도로 택하고 부르셨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주셨고 게다가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성도를 택하고 부르신 것은 성도가 왜 이 세상에 와 있는 가를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려는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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