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사도행전 3장 11-21절)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나면서부터 걷지 못해 평생 앉아서만 살아온 사람이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므로 벌떡 일어나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기적이 일어난 직후였다. 이 사건을 목도한 백성들은 모두가 놀라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백성들은 마음속에 질문을 품게 된다. 도대체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완전하게 나을 수 있는가? 베드로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 앉은뱅이가 일어선 것은 베드로 자신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치유해 주셨다는 것임을 명확하게 밝힌다. 사도들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증거일 뿐 이전에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병든 자와 죽은 자를 살리신 바로 그 분이 기적의 주인이시라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는 백성들이 죽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라는 것을 증언했다. 생명의 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메시야 그리스도이며,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이 사람을 고친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을 사형 죄목으로 삼았다. 그런데 그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약속하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명시했다. 『너희가 죽인 그 예수가 생명의 주이시다』 

베드로는 솔로몬 행각에 모여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유대인들의 역사적 배경과 삶의 정황을 복음의 내용과 알맞게 연결하여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죽인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여 그렇게 된 것이니, 이제 죄책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믿음을 가지도록 권면했다. 베드로는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면서 새로운 희망을 전했다.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예수님의 결백에 대한 빌라도의 판결과 변호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한 백성들의 죄는 더 크지만 알지 못하고 한 당신들에게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것이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구원을 전했다. 

베드로가 구원에 대해서 네 가지를 설명했다.『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그러면 새롭게 되는 날이 이르게 된다.』 회개는 repent를 말하며, 돌이켜는 be converted, 생명의 변화를 말한다. 그러면 주님이 죄를 씻어주신다.『새롭게 되는 날』에 대해서는 헬라어로, 아나(again)와 푸쉬케(soul)의 결합 용어다. 혼이 새롭게 된다는 것이다. 주인이었던 혼에서 영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정하신 구원자, 곧 예수를 보내신다. 이 말씀은 재림 예수를 의미한다. 주님은 만물을 회복하실 때에 오신다. 만물의 회복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거듭나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할 때를 말한다. 

주님이 이 땅에서 구원하는 길을 만드셨다. 그 첫번째의 시작이 회개다. 회개는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회개는 죄악에 대해서 버리고 죽는 것이다.  죄를 버리고(회개), 죄사함을 받는 사이에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be converted(거듭남)이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다. 회개하는 자는 영적 눈이 뜨지며, 어둠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빛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이다. 영적 눈이 뜨지기 전에는 아무리 성경을 공부해도, 주님의 뜻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주님을 만날 수도 없는 것이다. 예배는 회개가 아니라 회개한 자가 드리는 마음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눈으로 보지 않고, 단지 귀로 듣기만 하는 것이다.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지 않으면 구원받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얍복강 앞에서 주님이 야곱을 불쌍히 여기셔서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모든 죄인들은 회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알 수 없는 긍휼이시다. 회개하는 야곱에게 주님은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회개와 거듭남은 다르다. 그러나 분리되지 않는다. 회개하면 거듭나지만 회개없는 거듭남은 없는 것이다. 거듭나야만 죄 사함을 얻게 된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는 것이 바로 회개의 문제다. 회개를 죄의 고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지난 주에 죄를 지었습니다.』이제 고백했으니『죄를 용서해 주세요』라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눈물로 죄를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또 죄를 짓는다.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또 참회를 하는 것이다. 

자아(혼)라는 자기 정체성은 결코 바뀔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것은 육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버려야만 한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만 한다.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성령님이 이끌지 않으면 안된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는 자는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자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다시는『나』라는 존재를 위해서 살지않게 된다. 오직 주인을 위해서 살게되는 것이다. 주인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시다. 그 분과 연합되는 것이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지 않으면 마음이 괴로운 것이다. 

거듭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일 죄를 지을 것을 염려하는 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어떻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가 생각하는 자도 여전히 죄인에 머물러 있는 자다. 그러나 거듭난 자는 로마서 8장 1절의 말씀처럼  죄에 대해서 자유함을 갖는다. 거듭난 자는 요한1서 5장 17절의 말씀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뱀에 물리지 않게 뱀의 독을 조심 한다. 회개하고 거듭난 자에게 주님이 주시는 은혜다. 이것이 바로 사망이 생명에게 먹힌바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날마다 죽노라 라는 고백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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