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사도행전 27장 1-22절)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사도 바울과 누가는 배편으로 로마로 향하게 되며, 백부장 율리오가 그들과 다른 죄수들의 호송 책임을 맡게 되었다. 아마도 의사였던 누가가 노쇠하고 병약한 바울의 곁에 필요했기에 누가가 동행했을 것이다. 이 길고 어려운 항해의 길에 두 사람 외에도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게 되었다.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고, 이후 몇 개의 항구를 거쳐 로마로 가기 위해 미항이라는 곳에 다다른다.
그런데 그 때가 당시 9월이나 10월에 있는 금식하는 절기라고 표기된, 유대인의 속죄일이 이미 지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백부장 율리오에게 권했다.『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이미 여러 번의 파선 경험을 가진 바울은 당시 금식하는 절기가 지나 겨울이 다가오면 바람과 파도가 거세어 지고, 항해 가운데 큰 폭풍을 만날 수 있는 것을 알았기에 무리한 항해의 위태함을 알아 백부장에게 권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백부장은 바울의 권고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바울이 머물렀다가 겨울이 지나면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한 항구는 겨울을 지내기에 비교적 작은 항구라 불편했고, 뵈닉스라는 그레데의 항구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듣기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따라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임박한 겨울에도 불구하고 남풍이 순하게 불어 순조로운 항해가 시작되었다. 이 배는 곡식을 가득 실은 이집트에서 로마까지 곡물을 운반하는 배로 추정되기에 제법 컸을 것이다. 커다란 배가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굴로라고 하는 광풍이 크게 일어났다. 배의 크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파도와 광풍으로 위기 가운데 처하고, 선원들은 배 곁이나 뒤에 매달던 거루라고 하는 작은 거룻배 형태의 구조선을 간신히 끌어 올렸다.
그리고 풍랑에 깨져 버릴 것 같은 배를 밧줄로 감고, 스르디스라고 하는 모래톱에 걸려 좌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장을 내리고 바람에 밀려 다녔다. 하지만 그 다음날이 되어도 풍랑은 잠잠해 지지 않아, 사공들은 이제 배의 짐을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까지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더욱 악화되어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큰 풍랑도 여전해, 구원의 남은 소망마저 없어져 기진맥진한 상황이 되었다. 여러 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뿐 아니라, 풍랑에 따라 이리 저리 구르며 탈진하였기에 이제 아마 배에 탄 어느 누구도 살아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조차 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바울이 사람들 가운데에 일어났다. 광풍 가운데, 한치 앞도 볼 수 없어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사로잡혀 소망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바울은 안심과 소망의 말을 전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그 풍랑 속에서도 자신과 함께 계시며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통해 위로와 믿음과 평안을 회복한 것이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모두가 두려워하는 가운데 담대함을 소유한 삶은, 오직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누릴 수 있었다.
두려워하는 것은 두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의 위협적인 상황이다. 누구나 육으로 인하여, 상황에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나 믿는 자는 믿음으로 극복하게 된다. 그러나 두번째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불과 유황이라는 번역은 성령의 불과 말씀이라는 의미다. 둘째 사망에 보내는 첫번째의 그룹은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다. 두려워하는 자들을 주님은 위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공의의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하나님이기 이전에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죄에 대해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성도가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은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