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ㅣ(요한계시록 15장 1-8절)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요한계시록은 2~3장에서 소아시아 지역 일곱교회를 소개한 후, 4~5장에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갈 하늘의 예배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6장부터 16장까지는 요한계시록의 본론으로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 담긴 심판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심판의 말씀 사이 사이에 심판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들이 삽입되어 있다. 그것은 심판과는 상관없는 말씀이 아니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말씀이다. 즉 일곱 인에 담긴 심판에서는 여섯째 인을 땐 후, 일곱 나팔에 담긴 심판에서는 여섯째 나팔을 분 후에 삽입된 말씀이 나오는데, 첫 번째 삽입된 말씀인 144,000과 셀 수 없는 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서 있는 말씀은 6:17절에서 『진노의 큰 날에 누가 능히 서리요』에 대한 답변이며, 두 번째 삽입된 말씀인 작은 두루마리와 두 증인에 대한 말씀은 9:21절에서 『회개하지 아니하더라』에 대한 답변으로 두 증인의 복음증거를 통해서 회개하는 자들이 있음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중심으로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곱 심판 이야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첫째는 숫자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다. 하나님의 심판이 일곱이라는 숫자로 통일성을 가지는데, 이는 7이라는 숫자가 완전수로서 하나님의 심판이 완전함을 의미하며, 일곱 개의 심판 중 처음 네 개는 통일성을 가지는데, 이는 4라는 숫자가 심판의 대상인 피조물 전체임을 의미하기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는 출애굽 열가지 재앙의 배경이 되는 출애급 사건을 교회와 사탄의 관계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에 담긴 심판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우박, 불, 피로 변함, 쓴물, 어둠, 황충, 독종, 개구리의 등장과 같은 출애굽 열가지 재앙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출애굽 사건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셋째는 심판의 강도가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다. 일곱 인에 담긴 심판에서는 그 심판이 피조물의 1/4에게 임하는데, 일곱 나팔에 담긴 심판에서는 피조물의 1/3에게 임하며, 일곱 대접에 담김 심판에서는 그 심판의 대상이 피조물 전체에게 임하고 있기에 심판의 대상과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일곱 심판 이야기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위로와 격려, 소망이 되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경고와 심판이 된다. 이 심판이 세번에 걸쳐 반복되는 이유는 그 만큼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여기서 마지막 재앙이라는 것은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진 것으로, 그것은 일곱 대접에 담긴 심판을 의미한다. 이제 일곱 대접이 쏟아지면 그 다음에 더 이상의 심판은 없다. 더 이상의 심판이 없다는 말씀은 더 이상 회개할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심판의 목적은 심판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경고를 포함하고 있기에 심판이 진행 중이라는 것은 아직도 회개할 기회가 남아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곱 대접에 담긴 심판이 끝나면, 그 다음엔 최후의 심판만이 남아있기 때문에 더 이상 회개할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불이 섞인 유리바다가 나오는데, 그 유리 바다에 누가 서 있느냐면,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 즉 성도들이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이 유리 바다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있다. 이 모습은 바로 홍해를 건넌 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가에서 노래를 불렀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결국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성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하늘의 증거 장막의 성전에서 나온다. 그들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다. 그때 네 생물 중,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일곱 천사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성전에서 큰 음성이 들리는데 일곱 천사에게 그 금 대접을 쏟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이제 일곱 대접에 담긴 마지막 심판이 16장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네 생물 중 하나가 일곱 천사에게 건넨 금 대접에는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나 본래 5장 8절에 의하면 금 대접에는 성도들의 기도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금 대접에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채워져 있다. 이는 8장 5절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올려졌던 향으로 묘사되는데, 그 향을 담고 있던 향로에 불이 담겨 땅에 쏟아짐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과 같은 의미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함으로 고난을 받는 성도들의 기도는 그들을 핍박했던 세상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고난 받는 성도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심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경고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끝이 있다. 그 심판을 통한 경고가 끝나기 전에 돌이켜야 할 것이 있다면, 하루 속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깨달았을 때 바로 돌이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날, 전도를 할 때『예수믿고 구원을 받으라』라고 말한다. 설득하고 설명하려고 하며, 상대방의 지적 동의를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은『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할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안된다. 마지막 날에는 심판 때까지 쌓은 믿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보는 것이다. 회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행동으로 전환되는 것이 진정한 회개라는 말이다. 돈을 신으로 생각하는 자에게 세레요한이 회개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어두움에 처해 있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빛에 있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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