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을 왜곡하는 자들

에베소서 2 8절『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를 믿는 믿음은 거듭남의 믿음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죄인)가 예수와 함께 십자에서 죽고, 예수와 함께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믿음은 예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다 용서해주는 의미로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음으로 칭의를 받고, 원죄를 다 용서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죄는 과거의 죄는 용서받았지만, 현재와 미래의 죄는 용서받지 못하고 죄와 싸워 이겨야 한다는 말씀이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계명)을 통해서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아야 하며, 죄와 싸우기 위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죄를 지을 경우 즉시 예수의 피로 죄의 사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의 생각에 죄는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율법주의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계명을 지키면 죄가 아닌가? 마음의 탐욕은 어쩌나?

원죄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 이전에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마음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은 원죄와 세상죄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가 죄의 원인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과 그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죽으라는 것이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말 속에는 죄에 대해서 죽는다 라는 의미보다 죄를 씼는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 의미는 죄인이라는 고백과 죄의 용서를 믿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원죄는 개인 인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대대로 물려받은 죄의 속성으로 인해서 죄인이 되었으므로 죄인이라는 고백과 죄의 용서를 받으면, 원죄로부터 벗어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죽고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칭의와 성화의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칭의 따로 성화 따로가 아닌 것이다.

칭의와 성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믿음으로 주시는 의에 인간이 거룩해지려고 하는 노력을 섞여버리는 것이다. 이 의미는 죽고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의에 도달하려는 마음의 변화 정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두가지를 오해하는 것이다. 첫째, 예수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하므로,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하고, 성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에 도달하려는 행위를 구원에 접목하게 하는 것이다.

칭의와 성화를 살펴보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 대신에, 원죄의 용서와 세상죄를 짓지 않으려는 자기 노력과 죄를 지을 경우 용서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는 것을 두 부류로 나누어버리는 것이다. 예수의 보혈로 둘 다 용서를 받는데, 왜 나누어버리는 것인가? 원죄는 세상 인간이 직접 죄를 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세상죄는 자기가 지었기 때문인가? 예수의 보혈이 과거의 죄에 대해서만 사해주시고, 미래의 죄는 사해주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거듭남은 칭의와 성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죽고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다.

로마서 42-3절『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오늘날 이 말씀은 많은 교회에서 잘못된 해석을 함으로서 거짓복음이 만연하게 된다. 위의 말씀은 거듭난 자에게 해당되지만 아무나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식으로 값싼 구원을 퍼뜨리게 된 것이다.

이 믿음은 로마서 4 19-22절에서 말하는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의롭다 칭함을 얻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75세에『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로 인도받은 사람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75세에서 100세가 될 때까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했다. 25년간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지 못했다고 사도바울은 설명한다. 친척 롯을 데리고 나왔으며, 고향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여기다가, 결국 이스마엘을 낳는다.

오늘날 교회에 인도되어『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해도 아브라함 처럼『죽은 자 같이 되지 않으면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로마서 6장에서는 말한다. 많은 기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많은 기간 동안 대부분 교회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언약을 하신다. 3년된 짐승을 쪼개라는 것이다. 쪼개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나타낸다. 오늘날도 예배는 육적 죽음을 나타낸다. 예배가운데 다시 태어남을 믿는 것이다. 아브람이 동물을 쪼갠 후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제물을 태워버렸다. 이것을 두고 횃불 언약이라고 한다. 이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교회에 인도된 초대된 사람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육적인 것이 쪼개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완전한 언약은 쌍방이 하는 약속이다. 한 쪽이라도 어기면 쪼개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는 죽음이 없다면 쌍방언약이 아닌 것이다.

아브라함은 25년간 많은 경험을 했다. 전쟁을 이기고, 멜기세덱을 만나는 영적 체험을 하고,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우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아무리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해도, 부모로부터 받은 육신은 바뀌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99세 되던 해에 하나님으로부터『할례를 하라』는 명을 받아 할례를 했다. 할례는 육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서 씨의 약속을 얻는 것이다. 이는 로마서 6 4절의 세례와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6 15절에서『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사도바울은『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 새 창조요 거듭남이다. 왜냐하면 새로 지으심을 받은 몸이라야 영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부모로부터 받은 육체의 몸은 영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육체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원죄로 인해서 오염되었기 때문에 다른 몸으로 갈아 입으라는 것이다. 다른 옷이 그리스도라는 옷이다. 로마서 13 14절에서 바울은『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라고 당부한다.

아브라함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듯이, 우리에게도 심령에 불이 내려와 이전의 것을 태워버리는 역사가 일어나야만 한다. 이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길이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야 자기를 부인하는 회개가 있었다는 것이다. 육체의 눈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자기를 부인함으로서 믿게 된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자기부인을 의미한다. 죄를 고백하고 반성하는 것이 회개의 본질이 아니라, 자기부인이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자기부인의 것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 뜻에 맞지 않게 살았음을 고백한다고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도록 만든 자기를 부인하는 회개가 있어야만 진정한 회개가 되는 것이다. 회개라는 용어가 죄를 용서받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회개는 육의 삶을 벗어버리고, 하늘의 신령한 삶으로 옷을 입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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