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요한계시록 14장 8절)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무너졌도다』라는 말은 멸망, 굴종, 실각하다, 엎어지다는 뜻 이다. 바벨론이 천하에 제일가는 영광과 권세를 자랑하는 미녀였지만 이제 그 음녀가 실각하여 엎어져서 수치를 당하리라는 것을 확언한 말씀이다. 구약에도 이와 유사한 구절이 있는 바벨의 심판의 노래가 있다. 이사야 13장 19-22절에서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 그 곳에 처할 자 가 없겠고 거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 아라비아 사람도 거기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 곳에 그 양몌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오 직 들짐승들이 거긴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가옥에 충만하며 타조 가 거기 깃들이며 들 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 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예레미야 50장 39절과 51장 31절에서 『그러므로 사막의 들짐승이 시랑과 함께 거기 거 하겠고 타조도 그 중에 깃들일 것이요 영영히 거민이 없으며 대대에 거할 자가 없느니라.』『바벨론이 황폐한 무더기가 되어서 시랑의 거처와 놀람과 치솟거리가 되고 거민이 없으리라 했습니다.』
바벨론의 예언의 말씀대로 바벨은 망하고 말았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그 음행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다는 말은 바벨론의 부패를 의미하며 이 바벨론은 자신이 직접 수치자이며 또한 다른 사람도 수치케 하는 자라는 말이다.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즉 더러운 생각, 사상, 우상숭배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의 말씀을 짓밟아버렸다는 말이다. 더러운 자가 큰 지위와 세력을 가졌으니 더욱 남을 타락케 하고 범죄케 하는 것이다.
음녀는 만국과 왕들을 이 진노의 잔으로 취하게 했다. 사회, 경제. 종교. 정권 그 모든 것으로 인해 더러워졌다고 하였다. 죄는 부패케 하는 능력이 커서 남도 부패케 하며, 남의 목에 맷돌을 달아 바다에 넣는 흉악한 것이다. 세상에는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자가 많으니 그런 자는 바벨론이 무너지듯이 자신도 무너질 것이다. 세상의 나라와 세력이 번영할 때에도 당하지 못하리만큼 강하고 찬란하지만 그 세력과 영화도 붕괴되는 종말의 때가 있는 것이다.
바벨론에 임할 심판은 참으로 급격 할 뿐 아니라 최후 종말을 고하는 심판인 것이다. 그 광경은 계시록 18장 21절의 말씀처럼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바벨론의 완전 멸망을 의미한다. 인본주의, 향락주의, 정욕과 바벨의 음녀가 존경받고 설치는 곳은 어두운 곳이며, 그 화려함과 장함과 아름다움도 부패로 끝나고 수치와 무덤으로 인도할 뿐이다. 심판은 급하게 올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벨론 성에서 어서 나오라고 경고하고 계신다. 바벨론의 그런 수치를 피하기 위하여 성도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롯의 부인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신은 처음과 마지막이 다 돈이다. 애굽을 나온지 오십일(오순절)만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돌판을 받았다. 모세가 돌판을 받아서 내려오는 날, 아침에 맛나를 먹으면서도 염려하는 것이다. 『우리 무엇을 먹고 살지?』 그래서 그들이 만든 신이 애굽의 금송아지(만몬)였다.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신이 바로 만몬(666)이다. 오른손이나 이마나 표를 받지 못하면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한다. 세례요한이『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우리라』라고 말했다. 열매는 행함의 열매다. 구원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러나 회개는 행함이다. 말로만 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회개하면 구원이 일어난다. 회개는 애굽을 나올 때가 아니라 광야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애굽에서는 죄를 넘어가셨다. 유월절(pass over)이다. 애굽에서 히브리 백성들이 지은 죄는 단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굽은 세상의 종이므로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주님은 세상(길가밭, 돌짝밭, 가시떨기 밭)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시지만, 광야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히브리서 3장 16절『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는 소수가 아니라 전부였다. 모세를 따라 나왔던 모든 사람이다. 이것은 광야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한다.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너는 것은 세상과 단절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빠져나와도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래서 광야에서 모든 사람은 죄 아래 있음을 발견해야만 살 수 있다.
복음은 회개하는 자에게만 받아드릴 수 있다. 왜냐하면 회개의 복음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회개하지 않는 자는 증오할지도 모른다. 못박히신 예수를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만을 받아드리려고 할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사장과 서기관처럼 다 예수를 못박는 사람들이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격노케하는 자가 누구인가? 그들은 매일 맛나를 먹었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 아래서 매일 예배한 자였다. 그리고 매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자였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다.
민수기는 광야에 나온지 1년쯤 되었는데, 모세는 약 6개월 전 오순절에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가나안에서 지켜야 할 법을 가지고 내려와서 6개월동안 백성을 가르쳤다. 그리고 각 지파의 대표 약 5만명 중 가장 신앙이 좋은 자를 선택하여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냈다. 약속한 땅을 보고 오라는 것이다. 갔다와서 말하기를 민수기 14장 4절에서『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육신은 애굽으로부터 나왔지만 마음에는 애굽이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아무리 하나님 나라를 말하지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고백하고 눈물로 반성해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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