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4장 1-7절)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14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살펴본 11장-13장 내용을 다시 짚어보아야 한다. 11장 15에서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주님의 나라가 되었다고 선포했다. 주님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보상이, 적대자에게는 심판이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11장 18에서 심판과 상급으로 언급되었고, 바로 이어지는 12장에서 14장까지의 내용이 바로 이 심판과 상급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12장에서 하늘에서 등장한 붉은 용인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패배했다. 13장에서 땅으로 쫓겨 온 사탄은 바다 짐승과 땅 짐승을 대행자로 전면에 내세워 하나님을 가장하여 각종 기적과 기이한 일을 행하고 사람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유혹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14장 말씀을 통해 사탄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최후의 발악을 하면서, 요한계시록 당시의 성도들은 물론 오늘을 사는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배교할 것을 강요하며 핍박하지만, 결국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존재에 불과하기에 이에 굴복하지 말고, 담대하게 인내하며 승리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12장, 13장에서 붉은 용과 짐승은 바다에서 나와 바다 모래 위에 서있는데 반해, 14장 1-5절에서는 어린 양과 십사만 사천 무리는 시온 산에 서있다. 요한계시록 21장 11절에서는『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악의 무리가 서 있는 바다와 모래는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악의 무리는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부활하신 어린 양과 십사만 사천이 서있는 시온산은 하나님이 최후에 통치하실 장소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7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는 문자적인 수가 아니다. 십사만 사천은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구약의 열두 지파를 뜻하는 12와 신약의 열두 제자를 뜻하는 12 그리고 많음을 의미하는 1,000의 곱셈으로 이루어진 숫자로,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다. 십사만 사천이 땅에서 속량 받았다 것은 하늘에 속한 자들이 되었다는 의미다. 용과 바다짐승 그리고 땅 짐승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음과 같이 믿음을 지켰다고 증거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성경은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남녀관계로 비유하고 있는데,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순결한 처녀로, 신약에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묘사했다. 따라서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은 순결한 자』는 하나님과 어린양에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켜 우상 숭배와 배교를 하지 않은 자를 뜻한다.
앞서 2장 4-5절에서 에베소교회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마태복음 16장 24-25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우상에게 굴복하지 않고 믿음과 신앙을 인내로 지킨 성도들을 향해 주님은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고 선포하셨다. 선포하신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수확하시겠다고 하신다. 이처럼 악의 위협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견지한 성도들은 구원을 받지만, 하나님께 적대적인 세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엄중한 심판이 선포된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영원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영원한 복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이 영원한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은 로마서 6장 3-6절에서처럼, 세례의 의미로 표현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새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는 진리의 말씀이다. 옛사람이 죽지 않고,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도 죄는 그대로 있다. 죽는다는 것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임을 받아드리는 것이다.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니, 나 또한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하나님없이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고통 중에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것이다.
오늘날 가짜 복음이 난무하다. 예수 그리스도외에 율법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거나 내가 어떤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성경의 말씀을 왜곡시킨다. 죄인인 인간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해야할 일은 바로 날마다 죽은 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부인하고 죽은 자의 삶을 살지 않으면 모두 자기가 행하는 믿음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모두 자기의 의에 불과한 것이다. 믿음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복음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을 치신다.『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하나님께서 거듭난 자에게 성령으로 인을 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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