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요한계시록 18장 1-10절)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7장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초점을 맞추면서, 음녀로 상징된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바벨론은 역사상의 바벨론 국가라기보다는, 전 시대를 통틀어 하나님을 배반하는 우상 제국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성전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세상을 음행 속에 빠트린 바벨론과 닮은 로마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18장은 이런 바벨론에 임한 멸망의 과정을 좀 더 상세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심판의 결과들을 묘사해 주고 있다. 그것은 멸망의 선언으로부터 시작된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큰 권세를 가진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왔고 땅이 그의 영광 때문에 밝아졌다. 

그리고 그 천사가 힘찬 소리로 외친 것은 바로 『무너졌다』라는 선언이었다. 그 이유는 그 큰 도시 바벨론이 귀신들의 거처이자, 더러운 영의 소굴이요, 더럽고 가증한 새들의 집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셔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을 바꾸는 사람들을 보시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짐승들을 내쫓으시고 그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시는 장면과 연결된다. 그리고 성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들,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라고 하시며 분개하는 마음을 표출하셨다. 

그 큰 도시 바벨론을 빗대어 귀신들의 거처, 더러운 영의 소굴이라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벨론은 예수님이 보시기에 채찍을 드실 만큼 타락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의 원인을 묘사해 주고 있다. 그것은 만국이 음행에서 빚어진 분노의 포도주를 마셨고, 세상의 왕들이 음행하였으며, 세상의 상인들이 사치 바람에 치부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의 중심에 바로 그 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 큰 도시 바벨론의 음행에서 빚어진 분노의 포도주를 모든 민족이 마신 것이고, 그 큰 도시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그 큰 도시의 사치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다. 결국 그 큰 도시는 권력의 우상화, 사치와 허영, 도덕적 방종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나라들도 자신의 죄악으로 끌어들였으며 같이 죄를 지겠끔 한 것이다.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그 탐욕, 마음 속의 우상으로 인해서 모든 세상의 바벨론이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신 심판이다. 누구에게 대한 심판인가? 바로 죄인들에 대한 심판이다. 죄인들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대신 예수님이 죽으신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에서 복음의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죄인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의 죽음을 위한『죽음의 연합』이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장사된 자를 살리기 위한 은혜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믿으면, 하나님은 모든 죄를 사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인간의 눈으로는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이다. 가나안은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이며, 나의 생각과 의지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시지만, 그 약속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될 수 있다. 거의 대부분 백성들이『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생각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장정 60만명이 다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오늘날 죄성이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해도, 믿는 자가 거의 없는 이유는 자기의 경험 때문이다. 스스로 아낙자손이 되어, 자기가 아낙자손이 된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음에도 믿지 않는 것이다.『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해도 안되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어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산다고 말해도, 죄성은 죽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은 예수의 피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신다고 믿는 것이다. 옛사람은 죽지 않고, 예수의 피만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죄성은 죽지 않고, 오직 예수님이 대신해 죽으셨으므로 모든 죄를 예수의 피로 계속 회개하면 된다고 믿는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셈이다. 신도가 어떻게 믿는냐에 따라서 결과는 분명히 달라지는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