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요한1서 3장 13-24절)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3장 13-14절『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아델푸스)를 사랑함으로(아가포멘)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다나토)에 머물러 있느니라』세상은 사탄을 상징한다. 사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미워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자라는 것을 아는데, 그 근거가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형제는 영적인 형제를 의미하며, 사랑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형제들에게 심으므로, 그들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다. 다나토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다른 사람의 영을 살릴 수 없다.
3장 15절『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안드로포크토노스)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조엔)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영을 죽이는 자를 의미한다. 안드로포크토노스는 영적 살인을 의미한다. 영생(조엔)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는 의미다.
3장 16-17절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들의 영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형제들의 영을 살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여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자신의 영도 살아나고, 다른 형제도 영적으로 살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삶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재물이라는 것은 보화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한 자를 의미한다. 궁핍한 형제는 말씀이 빈궁한 자다. 말씀을 보유한 자가 말씀이 없는 자를 돕지 않으면, 영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형제를 돕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가지고 있는 재물을 사용해서라도 그런 여건을 만들어서 사용하라는 것이다.
3장 18-20절『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에르고)과 진실함(알레데이아)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에르고는 일, 사역을 의미한다. 영을 살리는 일이다. 말로 사랑합니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사랑의 기본인 것이다. 알레데이아는 진실함이 아니라 진리를 의미한다.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3장 21-22절『사랑하는 자들아(아가페토이)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카타기노스케)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파르메시안)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아가페토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아 라는 의미다.
카타기노스케(합성어)를 책망하다라고 번역했는데, 번역의 오류다. 카타는 ~을 따라서, 기노스케는 알다(히브리어에서 야댜 라는 말과 같은 의미)라는 말이다.『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카타기노스케)이 없으면』라고 번역되었는데, 우리의 마음이 진리되신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됨을 따라서』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파르메시안은 솔직히 말하다 라는 의미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 솔직히 하나님께 말씀드려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이 곤한 상태가 되었는데, 주님의 마음이 되지 못했다고 고백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하면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구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계명을 지키고 주님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계명은 율법의 십계명이 아니라, 살과 피에 관한 새계명이다. 영을 살리기 위해서는 예수의 살을 먹고(십자가와 연합) 예수의 피를 마시는 것(하나님이 죄를 사해주시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십자가의 복음을 통하여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다.
3장 23-24절『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오노마티)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오노마티는 이름이지만, 여기에서는 말씀(명령)이다. 이 말은 3장 22절에서 하신 말씀과 중복된다. 성령 충만을 받아서 주님이 말씀하신 새계명을 통해서 형제의 영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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