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베드로전서 3장 1-12절)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3장 1절『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아나스트로패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부부의 관계는 하나님과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비유된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다. 부부관계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떠난 영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관계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그리스도와 영들이 하나가 되는 관계를 에베소서는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남편과 아내는 모두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아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지만, 남편은 하나님을 믿지만, 호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베필이다. 돕는 의미는 원래 하나였는데, 둘로 나누어졌으므로 둘이 하나로 돌아가는 의미를 갖는다. 돌아가는 것은 아내가 남편에게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내(하나님을 떠난 자)가 남편(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을 순종하는 것이다. 아나스트로패스는 위에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내의 행실, 즉 아나스로로패스는 남편(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삶이다. 그래서 아내는 이와 같은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남편)에게 설명을 해주고, 자기 남편도 하나님을 떠난 자였는데,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므로 성령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라는 것이다. 아마 이전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아내가 거듭난 후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깨닫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남편에게 아내가 순종하므로, 남편도 그 이치를 깨닫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아나스트로펜)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남편은 아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과 아나스트로펜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다. 아나스트로펜은 거듭난 자의 모습이다.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의 변화된 모습이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투 프라에오스 헤쉬키우 프뉴마토스)』에서, 프라에오스는 하나님께 자기의 위치를 지키는 자가 되고, 프뉴마토스는 심령이 아니라 영이다. 아내(하나님을 떠난 자)가 영으로서 자기 자리를 지킬 때(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이 그를 값지게 보시는 것이다.
3장 5-6절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토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휘페쿠센)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부녀들과 사라가 등장한다. 거룩한 부녀들은 남편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들을 의미한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님이라 불렀던 것은 아브라함을 그리스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죽은 자같이 되는 100세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을 두고, 죽은 자 같은 그의 남편 가운데서 새생명(이삭)이 태어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선을 행하고(아가도포이우사이) 두려운(포부메나이) 일에 놀라지 않으면』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일이다. 사라가 선을 행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세때 자식을 준다고 했는데, 아브라함만 믿고, 사라가 믿지 않았으면, 그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사라도 함께 믿으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일이다. 정말 사라가 90세가 되어 임신을 했는데,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한다면, 아내들은 사랑의 자식들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선을 행하는 것은 복음의 씨를 전파하는 일다.
3장 7-8절 『남편들아 이와같이 지식(그노신)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그노신은 체험으로 알게되는 것(히브리어 야다와 같다) 남편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아내를 대하라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생명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 기도가 되는 것이다.
3장 8-9절『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형제는 영적 공동체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셨다. 그것이 예수님이 행하신 사랑의 응대였다. 선으로 악을 이기신 것이다. 사랑으로 미움을 덮으신 것이다. 박해로 말미암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로 흩어져, 떠돌이 신세가 된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먼저 가정을 세우라고 권면했다. 그것이 곧 교회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3장 10-11절『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아가도스)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좋은 날은 구원을 얻는 날이다. 이기도스는 선을 하는 것으로 번역되었는데, 복음을 씨를 퍼뜨리는 일이다. 입술은 화살모양이다. 입술로 거짓을 말하거나 악한 말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활을 쏘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활을 통제하는 일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는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령의 법 아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3장 12절『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오늘날 이신칭의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 라는 이론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으나, 하나님이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십자가의 예수와 연합되는 자를 하나님이 구원시켜 의로운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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