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장 14-25절)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1장 14-15절『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하기오이)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르곤) 거룩한 자가 되라』순종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는 동격이다. 순종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행실에 거룩한 자라는 것은 성도가 어떤 성결한 삶을 통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거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한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순종이고, 거룩한 행실(에르곤:사역)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는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 서로 하나가 되어, 음성을 듣고 서로 말하며, 그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모든 것이다. 거룩하게 되려면 무조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조건은 죄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대제사장이 동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성소에 들어간 대제사장은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모두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1장 16절『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하나님이 거룩한데, 어떻게 인간이 거룩해질 수 있는가? 반문할지 모르나, 거룩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를 불 태우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룩하게 인정해 주신다. 그래서 거룩한 자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요,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다. 

1장 17절『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에르곤:사역)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사역은 세상에서 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의미한다. 나그네는 인생이 나그네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들어왔으므로 나그네인 것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만일 돌아가지 못한다면, 둘째 사망에 처해질 것이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하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모두 죽었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1장 18-19절『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르곤:사역)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헛된 사역이란 율법주의를 의미한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그리스도를 발견하라고 하는데, 율법주의에 빠져서, 율법만 지키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헛된 사역인 것이다. 날마다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으면, 영원한 대속을 받았을 것이다. 그 대속은 피의 대가를 통해서 믿는 사람들에게 속량하신 것이다. 

보배로운 피는 생명이다. 십자가의 순종을 통해서 새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말씀이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므로 모든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이 생명의 대가를 치르므로(순종하므로), 사탄에게 붙잡혀 있던 자에게 자유를 주고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1장 20-21절『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크로놈)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말세라고 번역된 크로놈은 예수님의 초림을 의미한다.『창세 전에 미리 알린 바되나,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너희를 위해 나타내신 바 되어』 라고 해야한다. 창세 전에 미리 알린 바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예정이다.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을 옷을 벗기고, 그 영들이 흙속에 가두어서 인간이 되게 하고, 그들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스스로 의를 이룰 자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돌아가려는 자를 위해 이 땅에 성육신하여 십자가에서 그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비유가 탕자의 비유다.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서 탕자의 비유를 설명하신다. 탕자는 자기의 분깃을 아버지께 요구했다. 이는 천사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상징한다. 먼나라는 이 세상을 의미하며, 방탕한 생활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모습이다.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의 열매에서 돼지는 율법을 지키는 자를 의미하며, 쥐엄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같은 개념이다. 바로 율법이다. 헬라어 원어에는 쥐엄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껍질로 되어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속에는 생명나무가 감추어져 있는데, 껍질만 먹는 것이다. 즉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 만 지키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15장 21절에서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를 측은히 여기시는 것이다. 

1장 22절『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테 휘파코에 테스 알레데이아스) 너희 영혼(프쉬카스: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테 휘파코에 테스 알레데이아스는 우리의 순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순종하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혼(soul)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혼이 깨끗하게 되고, 영이 살아나므로, 거짓이 없으며, 형제의 영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형제 사랑이다. 

1장 23절『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디아 로구 존토스 데오)으로 되었느니라』말씀으로 된 씨는 그리스도이다. 디아 로구 존토스 데오(하나님의 살아있는 로고스를 통해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1장 24-25절『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육체는 육체로 비롯된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율법주의, 영지주의, 인본주의를 의미한다. 이들은 헛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만 영원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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