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한1서 1장 1-10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1장 1절 『태초(아르케스)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엪셀라페산) 바라』태초부터 있는(호 엔 앞 아르케스)으로 번역된 것은 그것은 태초로부터 있었다 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한글 번역자들이 호 엔 앞 아르케스를 맨 뒤에 있는 문장인 생명의 말씀과 동일시 생각하여 서로 연결해버린 것이다. 직역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것이 태초부터 있었다. 우리가 그것을 들었고, 눈으로 보았으며, 그것을 바라보았고, 손으로 만졌다. 그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그런데, 태초로 번역된 아르케스는 여성명사로서 남성형은 아르콘이다. 아르콘은 통치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성 명사로서 아르케스는 통치자가 아니라, 리더(대표격:이끄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한 문장에서도 태초가 아니라, 리더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태초부터 있는』것이 아니라, 『리더로 존재하는 그것』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의미한다. 리더로 존재하는 성령인 것이다. 

리더로 존재하는 그 성령을 우리가 들었고, 보았으며, 순간 순간 바라보며, 손으로 만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엪셀라페산은 손으로 만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손으로 다루다 라는 의미다. 손으로 성령의 능력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번역을 하자면, 성령충만한 사람은 성도를 이끄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눈으로 성령의 역사를 보며, 순간 순간 성령을 능력을 바라보며, 손으로 성령의 능력을 다루었다. 이러한 것은 생명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루어졌다. 생명의 말씀을 전하면서, 안수 등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런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눈먼 자에게 손을 대고 눈을 뜨게할 때, 간단한 말씀을 하시고 손으로 안수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1장 2-3절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이 생명은 그 생명(헤 조에)이다. 그 생명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에서 나온 성령의 법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1장 1절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말씀하셨는데,  성령의 역사는 그 생명(예수 그리스도)이 나타내신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보았고 들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교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귐에 있다.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아버지와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율법주의, 지식으로 전하고 지식으로 듣는 그런 신앙이 아니라, 영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일어나고, 그리스도와 함께 마음을 공유하는 그런 신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장 4-5절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그리스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빛이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 빛은 바로 하나님의 빛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다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신데, 성도는 좀 약한 빛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 분이 비추는 빛이 바로 성도의 빛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이 성도의 마음에 들어오시면, 그분의 빛으로 성도가 하나님의 빛을 발하는 것이다. 

1장 6-7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의 문제가 혼란을 주고 있다. 성도들은 빛 가운데 거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예수를 믿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얻고, 죄를 이겨나가도록 성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죄로부터 벗어나게 하도록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인간들은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을 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모든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다. 어둠에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라는 의미다. 말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의미를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1장 8-9절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다. 왜냐하면 그는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법은 죽은 자를 심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죽은 자가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심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죄를 덮어주는 것이다. 

1장 10절『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모든 인간이『우리가 범죄하지 않았다』는 말은 모든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적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대하여는 직접적 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나라(에덴동산의 비유)에서 범죄하여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죄보다 세상죄에 관심을 치중하고 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 죄로 여기므로, 그 이전에 먹음직도 하고 탐스러운 그 마음이 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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