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베드로전서 3장 13-22절)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3장 13절『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아가두)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선을 행하는 것은 헬라어로 아가두로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에게 십자가를 심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라는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3장 14절『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파스코이테)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여려움을 겪는 것은 복이라는 것이다. 파스코이테는 고난이라기 보다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힘든 여정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초대교회 당시는 교통이 불편하고 이동하는데, 여러가지 제약을 받았다. 

3장 15 절『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프라우태토스)와 두려움(포부)으로 하고』누군가가 그리스도인에 대한 소망을 묻는다면, 항상 준비해야만 한다. 소망은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원래 인간 속에 있는 영은 하나님 나라에서 있다가 쫒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탕자의 비유처럼 다시 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라우테토스는 겸손한 자세로, 포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3장 16절『선한(아가덴) 양심(쉬네이데신)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선한 양심은 남을 돕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보다, 복음을 전하므로서 죽었던 영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아가덴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이다. 선행으로 번역된 것의 원어는『텐 아가덴 텐 크리스토 아나스트로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을 위한 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복음을 전하면 비방을 하지만, 결국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3장 17절『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든 과정을 견디는 것은 세상을 위해 힘든 일을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다.  

3장 18절『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는 육의 몸은 죽고, 영이 성령의 능력으로 새생명으로 살아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렇게 인도하셨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복음을 전하므로서 이웃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라는 의미다. 

3장 19절『그가 또한 영(호)으로 가서 옥에(엔 퓔라케) 있는 영들(프뉴마신)에게 선포하시니라』호는 성령을 의미한다. 프뉴마신은 영들이다. 옥은 자유함을 입은 영이 아니라, 갇혀있는 영들을 의미한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영이 흙이라는 옥에 갇혀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이들의 마음에 들어가서, 갇혀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는 것이다. 

3장20절『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너희들은 마치 노아시대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과 같다는 것이다. 노아시대도 노아의 형제, 친척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여인의 후손에 대한 씨의 약속)을 믿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습을 비유로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한 관계로 세상을 심판하셨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노아와 그의 가족 7명 외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노아가 120년 동안 외친 것도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고 외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물로 심판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홍수가 내리기 5년 전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짓도록 명령하셨다. (성경에는 없으나 야살의 책에 기록됨) 노아가 120년을 방주를 지었던 것이 아니라, 120년간 회개를 외친 것이다. 방주에 들어가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으라고 외친 것이다. 방주를 다 짓고 홍수가 나므로 비로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것이다. 

3장 21절『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교회에서 세례를 줄 때 물을 적시나, 원래 침례는 물에 잠기는 의식을 한다. 물에서 죽었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물 밖으로 올라오면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로마서 6장 4절에서 처럼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표현했다. 세례는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세례는 먼저 죽음을 표현한다. 그래서 노아시대의 믿지 못한 자를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신 것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죽음의 세례가 된다. 그리고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은 다시 태어나는 자들로 표현된다. 

교회에서 하는 의식을 마음으로 확정하는 자는 하나님이 성도를 성령으로 거듭나게(다시 태어나게) 해주신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다시 태어난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성령을 물같이 부어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세례다. 성령세례는 이제 나가서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것이다. 선한 양심은 복음을 전하므로서 죽었던 영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영을 살리는 것이 주 목적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라고 말한 내용을 생각해야만 한다. 

3장 22절『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다 복종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이유는 하난미을 떠나 육체에 갇혀 죽었던 영들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죽었던 영을 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자된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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