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장 1-15절)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장 1절『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엔테 디아스포라)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하나님이시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육체로 계셨을 때, 그의 동생이었다. 열 두지파라는 의미는 야고보의 편지를 받는 수신자가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라는 것이다.
1장 2-3절『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페이라스모이스)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도키미온)이 인내(휘포모네)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페이라스모이스는 (마귀의)유혹을 의미한다. 마귀는 택한 자까지도 넘어지게 만들려고 하며, 이 땅에서 예수님까지도 유혹했다. 도키미온은 시도하는 것(영어로 the trying)이다.『휘포(~아래)모네(머물다)』는 합성어다. 말씀이신 하나님 아래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주의 음성을 듣기 위해 머무는 것과 같다. 성도가 마귀의 유혹에 순간적으로 빠지면, 믿음의 시도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머물게 되므로 오히려 기쁘게 여기라는 것이다. 휘포모네는 오늘날 『관상(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기도』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1장 4절『인내를(헤 데 희포보네) 온전히 이루라(아르곤: 사역, 텔레이온:온전한, 에케토:갖게한다)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하나님 보좌에 나아가 머무는 것(헤 데 희포보네)은 온전한 사역을 갖게 한다는 의미다. 온전히 이루라 로 번역된 것에는 사역이라는 말이 빠져 있다.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들이 사탄의 유혹에 빠지면 온전한 사역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 보좌에 나아가 머물게 되면,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시역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1장 5절『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소피아스)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아이테이토) 그리하면 주시리라』지혜라고 번역된 소피아스는 1장 4절에서 미혹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해결방안에 대한 것이다. 아이테이토의 기본형은 아이테오로서 여쭙다(ask) 라는 의미다.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여쭈어봐라는 것이다.
1장 6-8절『오직 믿음으로 구하고(아이테이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디아크리노메노스)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안드로포스)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아네르)로다』아이테이토는 여쭈어보다 라는 의미다. 에로타오는 친구간에 물어보는 것이지만, 믿음으로 물어보는 것과는 다르다. 전지전능하신 권능자에게 믿음으로 불어보는 것은 확실한 답이 있기 때문이다. 디아크리노메노스는 디아(~을 통하여)와 크리노(판단하다)의 합성어다. 주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 속으로 들어가서 판단하지 말하는 것이다. 만일 판단하게 되면 바다 물결처럼 요동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믿음은 완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신 사례들이 많은데, 병을 고친 후에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고 말씀하셨다. 믿음없는 사람은 두 마음을 품는 자라고 했다. 하나님 말씀을 믿기도 하지만, 자기의 생각을 섞는 자들이다.
안드로포스는 영어로 human으로서 일반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아네르는 남자라는 의미로 사역자를 의미한다. 사역자가 자기 생각을 섞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1장 9-11절『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파렐류세타이)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낮은 형제들은 사회적인 신분이 낮은 자들인데,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므로 신분이 높아짐을 자랑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부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섬기는 자로 생각해서 낮아짐을 자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자에 대해서 낙타와 바늘귀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을 했다. 파렐류세타이는 나그네가 잠깐 머물다가 지나가는 의미다. 이 땅에서의 부자도 나그네처럼 잠깐 만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1장 1-8절에서 마귀의 유혹을 말한 후에 1장 9-11절에서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다시 1장 12절에서 마귀의 유혹을 말한다. 이 이야기는 사역자들이 돈으로 인하여 미혹받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1장 12절『시험(페이라스몬)을 참는(휘포메네이)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조에스:영생)의 면류관(스테파논)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여기서 시험을 참는 것으로 번역된 것은『마귀의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 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부자가 휘포모네(하나님 보좌에 나아가는)의 기도를 하면, 물질에 대한 탐욕의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돈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주님이 승리의 관을 주신다. 면류관으로 번역된 스테파논은 승리의 관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면류관은 왕이 쓰는 것이고, 여기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가 쓰는 월계관이다.
1장 13-14절『사람이 시험(마귀의 유혹)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유혹)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마귀가 주는 유혹과 같은 것을 하시지 않으시며, 유혹에 빠지는 것은 사역자들이 욕심 탐욕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 탐욕의 근원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사탄으로 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사탄이 주는 마음이 바로 탐욕이라는 마음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자들은 사탄의 자식들이 되어있으므로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다.
1장 15절『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영적 사망)을 낳느니라』신학은 죄의 근원(원죄)를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죄의 근원은 욕심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보암직도 하고 탐스렇게 여겨지는 마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라는 것이다. 이게 탐욕이다. 그래서 그 결과 죄를 짓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원죄는 죄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원죄라고 말한다면, 계명만 지키면 죄가 아닌가? 마음의 탐욕을 죄로 보지 않는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인본주의 율법주의에 사로 잡힌 자라고 말을 할 수 있다. 탐욕을 가진 자는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이며, 그들을 죽은 자(사망)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죄가 장성하다는 표현은 탐욕이라는 마음의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죄를 지어도 꺼리김없는 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탐욕이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그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나님이 여겨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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