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야고보서 1장 16-27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1장 16절『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플라나스데)』플라나스데는 (사역자들에게)잘못된 길로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신앙의 방향을 돈이나 물질이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 정확하게 잡고 나가라는 것이다.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사역자가 잘못돤 방향으로 나가게 되면 사역자들에게 속는 결과가 초래된다. 

1장 17절『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께서 빛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도에게 좋은 은사와 선물을 주신다. 

1장 18절『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로고 알레데이아스)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로고 알레데이아스는 진리이신 말씀(그리스도)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3장 3-5절에서는 예수님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서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낳았다고 한다. 낳았다는 것은 거듭남이요, 부활인 것이다. 예수님이 첫 부활의 열매이듯이 성도도 또한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거듭남에 대해서 마음의 변화, 삶의 개선 등 인본주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거듭남은 예수와 함께 죽는 삶이다. 

1장 19절『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토 아쿠사이)는 속히 하고 말하기(토 랄레사이)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토 라는 것은 관사인데, 관사가 붙으면 토 아쿠사이는 주의 음성을 듣는 것, 토 랄레사이는 주의 음성을 가지고 말하는 것으로 번역된다. 듣는 것을 속히 하라는 것은 주의 음성에 듣는 것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성내는 것은 관사 토가 없으므로 주님이 아니라 자기가 성내는 것이다. 상담학에서 남의 말을 들어주고 말하는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1장 20-21절『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로고스)을 온유함으로(프라우테티) 받으라』로고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레마)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에 들어온 예수 그리스도(로고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프라우테티는 온유하게 라고 번역되었으나, 내용상은 공손하게 라는 의미를 갖는다. 

1장 22절『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파랄로기조메노이) 자가 되지 말라』파라로기조메노이는 파라(옆에서)와 로기조(계산하다)의 합성어다. 주님이 심령 안에서 말씀하시는데, 계산기를 두드리듯 자기의 생각을 섞어서 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1장 23-24절『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심령 속에서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섞어버리므로, 곧 그리스도의 말씀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서 보는 것은 날마다 보는 것이므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곧 잊어버리는 것으로 비유한다. 

1장 25절『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파라큎사스)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율법은 백성들을 구속한다. 마치 그물에 있는 물고기와 같은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갇힌 자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에게로 나가라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가 감추어져 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너희들은 모두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철저히 율법의 규정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의를 주시겠다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도저히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었으며, 그에 따라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창세기 3장 15절의 여인의 후손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 속에서 영원한 속죄의 대제사장, 멜기세덱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갇힌 자가 아니라 죄의 그물에서 자유함을 입게 되는 거이다. 온전한 율법은 바로 율법 속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파라큎사스는 파라(옆) 큎사스(들여다보다)로서 옆에서 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항상 옆에 두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항상 핸드폰을 가지고 무엇인가 들여다보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1장 26절『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심령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씀을 들은 사역자들은 그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듣게되는데, 성경 말씀을 읽고 깨달음으로, 방언으로 듣고, 심령 속에서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하시는 말씀을 듣는다. 방언은 다른 사람들이 알기가 쉽지 않으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음성을 듣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방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라기 보다 자기가 하나님께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방언을 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전하는 말씀(방언)과 의미가 다른 것이다. 

자기 혀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성급하게 말하지 말고 듣기를 먼저하라는 것이다. 마음(마르디안)을 속인다는 것에서 마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영어 성경이 더 잘 표현되어 있다. heart와 mind가 있는데, heart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즉 영의 마음이고 mind는 육신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혼의 마음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마음을 속이는 것은 육의 생각을 주님의 음성에 섞어버리는 것이다. 혼의 생각을 영의 마음에 섞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속이는 자가 된다. 

1장27절『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들맆세이)중에 돌보고(에피스켚테스다이)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들맆세이는 환난이 아니라, 떠 밀려가는 것이다. 고아와 과부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지만,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이다. 이들은 세상에서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고아와 과부를 찾으신다는 표현을 한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신다. 그래서 부르짖는 자들(영들)에게 하나님께 나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점으로 나가는 것이다. 에피스켚테스다이는 에피(~위에:영어의 on이다) 스켚다이(목표:goal)의 합성어다. 돌보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목표점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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