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야고보서 4장 1-11절)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4장 1절『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헤도논)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헤도논은 욕심으로부터 나오는 쾌락을 의미한다. 욕심이 생기면 그것을 달성하려고 하는 마음이 쾌락적인 것이다. 결국 교회 지도자들이 욕심으로부터 다툼이 생기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4장 2-3절『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헤도나이스)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온갖 방법을 다해서 욕심으로 이루려하지만, 결국 얻지 못하는 것이다. 교역자들이 선생이 되어 얻으려고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간구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데, 그것은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즉 교역자들은 세상의 것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데, 그들이 하나님께 구해도 헤도나이스(욕심으로 인한 쾌락)를 위해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늘의 것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4장 4절『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간음하는 여인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사탄)과 벗된 자를 의미한다. 왜 간음한 자를 여인으로 표현했는가? 여자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먹은 하와를 상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를 상징한다. 세상의 벗은 세상을 사랑하는 부자를 상징한다. 이 세상에 돈을 많이 가진 자도 부자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탐욕(옛사람, 우상)을 가진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는 사탄의 추종자가 된다.
4장 5절『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하나님은 성도를 심령 속에 거하는 성령이 하나님을 시기하는 정도로 사랑한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4장 4절에서 교역자들이 영적으로 간음을 하므로 하나님의 분노가 얼마나 크시겠는가? 탐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4장 6절『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휘페레파레이스)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타페이노이스)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탐욕이 있는 자에게는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더 큰 은혜를 주시고, 깨닫고 돌아오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휘페레파레이스는 위에서 비추는 것을 의미한다. 즉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사람들 위에서 자기를 비추려고 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물리치시고, 타페이노이스는 아래로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4장 7절『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휘포타게테) 마귀를 대적하라(안티스테데 데 토 디아블로)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퓩세타이)』 휘포타게테는 위에 있는 질서를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받기를 원한다면, 이같이 하라고 명령하신다.
첫째는 하나님께 복종하라고 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들은 대부분 유대인 기독교인들이었다. 여전히 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자들이었다. 하나님께 복종하라는 말은 십계명을 지켜라 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십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들어와 호로고스의 말씀 속에서 살아라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탐욕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기를 낮추고 부인하는 삶이 바로 새계명인 것이다.
둘째, 마귀를 대적하라는 것이다.『안티스테데 데 토 디아블로』안티는 반대하는, 스테데는 서있다라는 말이다. 영어의 stand이다. 마귀를 반대하고 따라가지 말고 멈추라(서있으라)는 것이다. 마귀가 유혹하는 것은 탐욕이다. 선악과를 먹는 것이 죄의 근원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고자 하는 탐욕(먹음직도 하고 탐스러운지라)이 생기는 것에 멈추라는 것이다. 탐욕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죽음 만이 가능한 것이다. 퓩세타이는 도망가다라는 의미다. 마귀가 도망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탐욕이 죽으면, 결국 마귀의 머리도 깨어지기 때문이다.
4장 8절『하나님(토 데우)을 가까이하라(엥기사테)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셋째는 성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것이다. 성도는 직접 성부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성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매 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이 때 성령은 보혜사 성령이시다. 기도로서 간구하여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 기도가 세상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성령 충만을 위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넷째가 죄인들에게 손을 깨끗이 하라는 것이다. 죄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교역자는 자신이 죄의 상태로 들어가는지, 매일 손을 씻듯이 바라보라는 것이다. 죄를 씻으라는 것이 아니라, 죄의 원인이 되는 상황에 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다섯째가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성결하라고 한다. 두 마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도 좋아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은 영적으로 간음하는 자들이다. 성도가 거룩해지는 방법은 자기를 하나님께 태워서 영적 산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는 것 만이 성결해지는 길이다.
4장 9절『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여섯째,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라는 것이다. 교역자들이 사탄에게 속아서 두 마음을 품게된 것을 깨닫고 슬퍼하라는 것이다. 애통하다는 말은 원통해서 통한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사탄에게 속아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있던 것을 깨닫고 애통하라는 것이다.
4장 10절『주 앞에서 낮추라(타페이노데테)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일곱째가 주 앞에서 낮추라는 것이다. 타페이노데테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영이 가난한 자들이다. 자신이 하나님께 대하여 지은 죄를 깨닫고, 영이 가난하게 된 것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죄를 깨닫는 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다.
4장 11절『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여덟째가 형제를 비방하지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판은 육의 눈으로 바라보고, 자기의 잣대로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특히 교역자)가 형제를 비판하면, 결국 형제를 율법의 잣대로 판단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을 하면서 비판하므로 율법에 대해서 살아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판관인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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