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21-29절)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3장 21절『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율법은 백성들의 죄를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죄 용서를 받기 위해 제사를 드림으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율법 속에는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과 율법주의는 다른 것이다. 율법주의는 오직 규정을 지켜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바울이 지적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율법주의를 의미한다. 바울이 말하기를 율법(율법주의)은 능히 살게하는 것이 아니지만, 만일 그렇다면 의가 반드시 율법(율법주의)으로 말미암았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율법주의)에서 의가 나오지 않으므로 율법(율법주의)은 능히 살게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3장 22절『그러나 성경(구약성경)이 모든 것(테 판타)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쉬네클레이센) 이는 예수 그리스도(예수 크리스쿠)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에크 피오체스) 약속(헤 에팡겔리아)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테 판타는 모든 것들로서 복수다. 이는 3장 21절에서 말하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들을 이루려고 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쉬네클레이센은 갇혀 있다는 의미로서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것은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느냐 라는 것이다.
헤 에팡겔리야는 단 하나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구약성경에서 여러 번 등장하지만, 오직 유일한 하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약속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잘하면 구약성경에서 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하신 모든 약속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이다. 바울이 현재 말하고 있는 유일한 약속은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을 의미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것이다. 구약의 약속들은 이미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성취된 것이다. 에크 피오테스를『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으로 번역했는데,『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3장 23절『믿음(텐 피스틴)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피스틴)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여기서 텐 피스틴(믿음)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율법 아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면, 법이 필요없는 것이다. 법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가? 없다는게 문제다. 그래서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될 때(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성령이 성도를 인도하신다.
3장 24-25절『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성도가 율법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이제 더 이상 율법은 필요가 없게 된다. 이때 율법은 규정에 얽매인 율법주의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율법은 초등교사와 같이 읽는 자로 하여금 그 속에 그리스도가 있음을 계속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읽는 자가 아 그렇구나 율법은 결국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군 하고 깨달으면 더 이상 율법주의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3장 26절『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휘오이)이 되었으니(에스테)』디아는 ~을 통하여 이다. 너희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 라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으로 통과하여, 그 믿음 안에서 라는 것이다. 휘오이는 아들들(복수)이다. 에스테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시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다. 바울이 성도들을 행하여 너희들 이라고 표현했지만, 바울이 말하는 대상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들들(sons)과 자녀들(children)의 차이에 대해서 이해가 필요하다. 아들들(성인)은 법적 상속인으로 직계가 없으면, 양자를 택한다. 아들들은 양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는 자들이다. 세상에서도 기업의 총수가 자신의 자녀들(아이들)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주지 않는다. 자녀들은 아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기업을 물려주지 않듯이 하나님 나라 기업의 상속은 없는 것이다. 그냥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 그런데, 자녀에서 아들의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믿음으로 말미암아(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녀는 그런 믿음이 없는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성도의 믿음에 대해서 판단하시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가운데, 휘포포네가 잘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평가가 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가운데, 지성소에 들어가는 믿음을 소유한 자가 대제사장이요,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심령 가운데, 성소까지 들어가는 자가 있을 것이고, 성소 밖 마당만 밟는 자도 있을 것이다.
3장 27절『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여기서 세례는 물세례를 의미한다. 세례는 예수와 함께 육의 몸은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하나님이 성령세례를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진 자라는 것을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옷이 바로 영의 몸(장막)이라는 것이다.
3장 28절『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헬라어 원본에는 유대인도 아니고, 헬라인도 아니고, 종도 아니고, 자유인도 없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구원이다.
3장 29절『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아페르마)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아페르마는 씨다. 성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영적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씨(그리스도)이듯이, 성도도 아브라함과 같은 씨(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성도는 이 씨를 다른 사람에게 심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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