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장 1-12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5장 1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테 엘류데리아) 자유를 주셨으니(엘류데로센)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스테케테)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테 엘류델아는 그 자유를 위하여 라는 말이다. 엘류데로센은 미완료동사로서 순간적으로 자유를 주었고, 그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자유라고 표현되었지만,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율법으로부터 종의 멍애를 벗었다는 것이다. 스테케테는 굳건하게 라는 표현은 없고, 그냥 서라는 의미다. 즉 그 자리를 벗어나지 말하는 것이다.
5장 2절『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할례는 몸에 상처를 내는 행위이지만, 씨의 약속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는데, 그 약속을 기다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할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자가 된다.
5장 3절『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할례를 받는 행위는 율법주의를 나타내기 때문에 할례를 받는 자는 모든 율법(613가지)을 다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부여된다. 율법 전체 중 한가지라도 어기면 안되는 것이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자는 없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짓는 탐욕의 죄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죄인이 되는 것이다.
5장 4절『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카테르게데데)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여기서 율법안에서는 율법주의를 의미한다. 복음이 아니라 율법의 규정에 얽매이는 자를 나타낸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주의로 나가는 자들은 예수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세상에 왔는데, 그들이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히브리어:메시아)를 기다리는 자들이므로, 예수를 십자가에서 못박은 바리새인, 제사장들과 같은 자라는 것이다. 카테르게데데는 끊어졌다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또 다른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전부터 끊어진 자라는 것이다. 이들은 사실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아닌 것이다.
5장 5절『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에크 피스테오스)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구원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율법주의 신앙은 성령과 상관없는 자인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는 성령세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물세례로 그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율법주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죄로 여기므로, 항상 계명을 바라보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계명을 어기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용서받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의미도 모르고, 거듭나지 못하므로 성령세례도 모르는 것이다. 에크 피스테오스는『믿음으로부터 나온』 이라는 의미다. 성령과 믿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나온 성령이다. 즉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성령으로 함께 부활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부터 나온 성령이라는 의미다.
5장 6절『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스퀴에이)이 없으되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이스퀴에이는 힘이 없다는 의미다. 하나님 나라의 의를 받을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할례를 받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받으면 안되는 가 라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율법의 규정을 하나 하나 지켜야 하느냐 아니면 안지켜도 되느냐 라는 논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율법 속에 하나님이 담겨둔 의미를 깨닫고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5장 7절『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테 알레데이아)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그 권면(페이스모네:권유)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헬라어 원문에는 [τῇ ] ἀληθείᾳ 로 되어 있다. 테 부분에 [ ]를 표시한 부분은 어떤 사본에는 테가 있고, 어떤 것은 테가 없으므로, 독자가 읽고 판단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테가 있으면 테 알레데이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지만, 테가 없으면 일반적인 진리인 알레데이아가 된다. 문맥상으로 볼 때 [ ]가 없는 일반적인 진리를 의미한다. 즉 율법주의로서는 하나님 나라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페이스모네는 권유, 설득으로서 율법주의는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권유한 것이다.
5장 9절『적은(미크라)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적은 누룩은 율법주의를 의미한다. 미크라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것을 의미한다. 교회 안에서 진리와 분별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율법주의가 이렇게 교회 전체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일요일에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문제가 있는게 아니다. 그런데, 주일성수라는 개념으로 반드시 주일에는 교회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게 율법주의라는 말이다.
5장 10절『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페포이다)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토 크리마)을 받으리라』바울이 보내는 수신자는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선언했다. 페포이다(문법적으로 과거)는 확신했다는 의미다. 바울이 말하는 대상은 율법주의를 퍼뜨리는 사람에게로 향한다. 율법주의를 퍼뜨리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는 말이다. 토 크리마는 최후의 심판을 의미한다.
5장 11절『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스칼달론)이 제거되었으리니』 유대인들 중에는 바울이 할례를 전하고 있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바울이 항변하는 것과 같은 말을 한다. 스칼달론은 실족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이 십자가의 도를 전하므로서 박해를 받았는데, 만일 할례를 전했다면, 나도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데, 십자가 때문에 발생하는 걸림돌(실족하는 것과 같은 고통)이 없었을 것이다.
5장 12절『너희를 어지럽게 하는(아나스타툰투스)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아나(위에)스타툰테스(세우다)는 영어로 raize up(일으키다)과 같은 의미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난다)
위의 문장은 두가지다. 스스로 베어버리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바울이 좀 심하게 질책했다. 할례는 성기의 끝에 상처를 내는 행위인데, 아예 스스로 잘라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잘라버리는 것처럼, 할례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부활과 같은 그런 자가 될 것이다 라는 것이다. 헬라어 원어는 우리말 성경과 두 문장의 위치가 다르다.『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아나스타툰투스) 자들은』이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전혀 의미가 다른 우리말 번역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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