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에베소서 3장 13-21절)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3장 13절『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아이투마이)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들맆세스)에 대하여 낙심하지(엥카케인)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아이투마이(문법적으로 중간태)는 물어보는 것, 영어의 ask에 해당한다. 중간태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내가 내 안에 있는 호 로고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들맆세스는 떠밀려 들어가는 것(영어:push)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이 거대한 손으로 성도의 심령 속의 지성소에 들어가라고 떠민다는 것이다. 엥카케인은 연약하다 라는 의미다. 다시 번역해보면,『하나님이 성도를 지성소에 들어가라고 떠미는 그 가운데서 성도가 연약해지지 않도록 내(바울)가 너희를 위하여, 나(바울)의 심령 안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것이 너희의 영광이다.』
3장 14-15절『이러므로 내가 하늘(우라노이스)과 땅에 있는 각 족속(파사 파트리아)에게 이름(오노마제타이)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우라노이스는 관사가 없는 복수 하늘로서, 교회 공동체를 의미한다. 파사 파트리아는 각 족속이라고 번역되었는데, 모든 (신앙의)가족을 의미한다. 오노마제타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다. 하나님 아버지께 무릎을 꿇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비노니 라는 단어는 헬라어에는 없는 것이다.
3장 16절『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은 너희를 강건하게 하시는 것이다. 강건하게 하는 방법이 네가지가 있는데, 첫째,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강건해지고, 두번째, 능력으로 강건해지고, 세번째 성령을 통해서 강건해지는 것이다. 네번째, 속사람 속으로 들어가므로서 강건해진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의 영광의 풍성함이 얼마나 크게 나타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속사람 속으로 들어간다. 속사람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를 의미한다.
3장 17절『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카토이케사이 톤 크리스톤)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카토이케사이 톤 크리스톤은 그리스도께서 심령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심령 안에 호 로고스가 있게 되는 것은 두가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첫째가 믿음이고, 두번째가 사랑이다. 믿음은 내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인 것이다. 사랑은 아가페로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인간인 내가 그런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로 인한 사랑인 것이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는가?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아가페는 십자가의 은혜로 영을 살리는 일인 것이다. 성도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그 아가페의 사랑이 성도의 심령 가운데 들어오게 된다. 하나님이 성령세례를 통해서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아가페의 사랑이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것이다.
3장 18절『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그노세오스)에 넘치는(휘페르발루산)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그노세오스는 지식이 아니라, 앎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아는(히브리어 야다)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 앎을 통해서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3장 19절『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엨시스퀴세테) 하시기를 구하노라』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너비 길이 높이 깊이를 설명한다. 엨시스퀴세테는 너희가 할만한 힘이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바로 이런 힘을 갖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채워지게 된다.
3장 20-21절『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성도가 믿음과 사랑을 구하거나 할 때,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께서 넘치도록 역사하신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첫째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교회를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함께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생명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가 또한 그 성도의 심령 가운데, 들어가서 성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심령 가운데, 성전에서 하나님과 성도가 기도 가운데, 만나는 것이다. 성전이 곧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는 교회인 것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에 임재하시는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아가 성도들이 모이는 그 연합 속에 함께 성전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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