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갈라디아서 1장 13-24절)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1장 13절『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아나스트로펜)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아나스트로펜은 위에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의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선 것을 말하는 것이다. 

1장 14-15절『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아포라사스)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아포라사스는 구별하다라는 의미다. 택정하다라고 번역한 이유는 예정교리로 인한 것으로 보여진다. 구별하다라는 말을 통해서 바울의 어머니의 신앙이 좋은 것을 알 수 있다. 

1장 16절『그의 아들(톤 휘혼)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아포칼륖사이)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사이키와 하이마티)과 의논하지 아니하고(프로사데데멘)』휘혼은 아들이지만, 톤이라는 정관사가 붙어서, 톤 휘혼이 되면,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한다. 아포칼륖사이는 계시하다 라는 의미다. 사이키(육)와 하이마티(피)는 혈육으로 번역되었는데, 마치 혈육은 가족으로 연상된다. 그러나 육과 피를의미한다. 육과 피는 부모로부터 내려오는 유대 율법주의적 종교심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프로사데데멘과 연결된다. 프로사데데멘은 자기 생각대로 아니하고, 즉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다. 

1장 17절『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아넬돈)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아펠돈)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휘페스트렢사)』바울은 사도들이 바라볼 때, 여전히 유대 율법주의자였다. 그가 비록 예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지만, 전도자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베드로, 야고보 등 사도들을 만나야 했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헬라어에는 미완료시제가 있는데, 순간 순간 어떤 일을 하는 것을 표현한다. 아넬돈, 아펠돈, 휘페스트렢사 이 단어들이 바로 미완료시제로서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순간 순간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아라비아로 가서 호 로고스의 말씀을 전도하고 다메섹으로 가서 계속 말씀을 전했다는 것이다. 

1장 18절『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베드로)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안넬돈)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에페메이아)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헤테론)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그 후에 대해서는 바울이 아라비아를 갔다가 다메섹에 가서 전도하고, 삼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갔다는 것이다.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몇 년을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아라비아와 다메섹에 대해서 이해가 필요하다. 아라비아는 사막을 떠올린다, 즉 광야라는 의미다. 호 로고스의 말씀이 없는 곳을 광야라고 표현한다. 다메섹은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가던 곳이다. 호 로고스의 말씀이 있는 자를 죽이려고 한 것이다. 아라비아로 간 것은 호 로고스를 전하러, 바울이 다메섹에 간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간증하고, 호 로고스의 말씀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안넬돈, 에페메이나 역시 미완료 시제로서 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고, 그곳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1장 19절『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헤테론)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야고보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의 두명인 야고보(큰 야고보:세베대의 아들, 작은 야고보:알페오의 아들)와 다른 예수님의 생전 혈육(동생)이었던 야고보를 의미한다. 이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열두 제자가 아니라, 예루살렘의 총회를 관장하는 총회장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도들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은 예수님의 형제 말고 다른 사람(사도)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없고, 그들은 전도하러 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마치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를 사도로 생각하고 그 외의 다른 사도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열두 사도에 속하지 않은 야고보와 예수님이 임명한 사도를 구분하기 위해 바울이 말한 것을 보여진다.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 다른 사도라고 바울이 불렀다. 당시에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인데, 회심하여 예수님을 전파하고 있었지만, 사도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사도로 인정받으려 한 것이다. 당시 사도는 예수님이 직접 임명하신 열두 사도(바울을 포함하면 열세명)와 그 외에 바나바를 포함하여, 호로고스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던 자들도 사도라고도 표현했다. 즉 다른 사도들이란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그 외 호 로고스를 전하는 자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바울이 자기도 사도 안에 있는 자라는 것을 갈라디아서에서 표현하고 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지명하는 70인의 사도라는 표현도 있다. 즉 사도들이란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가 함께 하며,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하는 자를 사도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사도(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다. 

1장 20-24절『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텐 피스틴)을 지금 전한다(유앙겔라제타이)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엔 에모이) 하나님께 영광(에돜사존)을 돌리니라』 

안디옥(바울과 바나바가 사역했던) 바로 위에 수리아와 길리기아가 있다. 이 두 도시들은 대도시였다.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라는 표현이 바로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표현한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자인데, 이제 예수를 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텐 피스틴은 그 믿음으로서 박해하던 그 믿음이 아니라, 잘못된 믿음으로 인하여 박해했던 그 믿음에서 돌아선 회심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앙겔라제타이(중간태 동사)는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이 말씀을 전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회심하게 되었는가를 간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간증을 다른 사람들에게 듣게 한다는 말이다. 복음을 전파한다는 기본적 모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어떻게 회심하고 호 로고스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가를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라는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엔 에모이) 하나님께 영광(에돜사존)을 돌리니라』엔 에모이는 내 안에서 라는 의미다. 바울의 설교를 듣는 사람으로 인해서, 그들이 바울의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울의 심령 속에서 살아있는 호 로고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