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빌립보서 3장 1-11절)『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

3장 1절『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우크 오크네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아스펠레스)라』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과 같은 말이다. 우크 오크네론은 느리지 않다는 의미다. 주 안에 있으면 신앙이 자라는데, 느리지 않다는 것이다. 아스팔레스는 안전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3장 2절『개들을 삼가고(블레페테) 행악하는 자들(카쿠스 에르가타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텐 카타토멘)을 삼가라』 블레페테는 주의해서 살피라는 말이다. 카쿠스 에르가타스는 악한 일꾼들이다. 텐 카타토멘은 할례자를 의미한다. 개들, 악한 일꾼, 할례자들은 모두 율법주의자를 의미한다. 율법과 율법주의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율법은 그 속에 그리스도가 감추어져 있지만, 율법주의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그리스도를 죽이는 역할을 한다. 율법주의는 오직 규정에 얽매여 있는 자들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죄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주셨으며, 희생제사를 통해서 장차오실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 율법주의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복음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3장 3절『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라트류온테스)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사르키)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페리토메)라』 라트류온테스는 제사장직을 사역하는 것이다.  사르키는 종교심(인본주의 종교)을 의미한다. 페리토메는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다. 성령세례와 같은 의미다. 할례나 세례는 육적 옛사람의 죽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의식이 아니라, 마음에 이런 일이 나타나야 라는 것이다. 마음의 할례는 마음의 세례(성령세례)와 같은 것이다. 형식적인 의식을 통해서 마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난 일을 믿지 않고 형식적인 할례나 세례만 생각한다면, 그 의식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구약시대 할례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마음의 할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듯이, 신약에서도 교회 사람들이 세례에 대해서 말하지만,성령세례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  

3장 4절『그러나 나도 육체(사르키)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사르키는 종교심을 의미한다. 사르키는 육체라고 번역되었지만, 엄밀히 성육신을 의미한다. 육체 속에서 나타나는 종교심이다. 유일하게 인간만 신을 찾는 종교심이 있는데, 그게 육신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게 사륵스(어근)다. 

3장 5절『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바울의 부모가 율법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에 대해서, 디아스포라 히브리인들은 히브리어를 잘 못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바울은 히브리어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전에 이런 바울이 육체를 자랑하는 사륵스였다는 것이다. 

3장 6절『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바울이 교회를 박해한 이유는 기독교는 율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향하는 종교였기 때문이다. 율법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율법주의가 된다. 말하자면 바울도 한때 율법주의자였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안에, 율법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리지만, 율법에 있는 도덕법은 지켜 행하고, 십일조를 강요하고, 주일성수를 행하고, 교회 건물을 성전으로 여기고, 성령세례없는 물세례를 구원으로 생각하며, 구약의 절기와 같은 각종 절기를 만들어 지켜 행하고 있는 것이다. 

3장 7-8절『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제미안)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그노세오스)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제미안은 손해를 의미한다. 이 전에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신앙에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그노세오스는 관계를 통하여 알게되는 지식(히브리어 야다)이다. 교회에서 종교적인 신앙은 손해를 끼친다. 그래서 다 버려야 하는 것이다. 종교적인 신앙은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가 대표적이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종교적 신앙은 율법주의를 말한다. 

3장 9절『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디아 피스테오스 크리스투)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 디아 피스테오스 크리스투는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내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 라는 말이다. 인간 중에는 율법에서 난 의를 가지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구약시대 믿음의 선진들은 율법을 통해서 인간은 죄인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3장 10-11절『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톤 파데마톤)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이 세가지를 알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부활의 권능, 고난에 참여함이다. 첫째,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십자가에서 함께 부활함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죽은 자에 대해서 예수의 피를 통하여 죄를 사해주시고, 다시 태어나게 해주시는 것이다. (부활,거듭남)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아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부활된 것과 부활의 권능을 부여받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두번째,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부활의 권능을 부여받는다. 예수와 연합된 자는 이 땅에서 다시 태어난 심령 속의 부활한 자들이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신다. 그런데, 부활의 능력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가 쉽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듭난 자에게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맡기시는데, 부활의 능력이 없다면 맡기실 수 없는 것이다. 부활의 능력은 심령속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로 부터 그 능력을 부여받는 것이다. 이것을 성도들이 알아라는 것이다. 

세번째, 고난에 참여함이다. 톤 파데마톤은 문법적으로 복수로서 고난들이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포함한 주님이 겪은 모든 고난을 의미한다. 고난은 영어로 passion으로서 수난을 의미한다. 이 수난은 어쩌다 겪는 그런 일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어려움인 것이다. 성도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타나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데, 그것을 참아내는 수난을 의미한다. 그래서 수난은 열정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따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훈련을 참아내는 열정과 같은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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