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장 1-2절『하나님(데우)의 뜻으로 말미암아(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관사가 없는 데우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디아는 ~을 통하여 라는 말이다.『그리스도의 뜻을 통하여』가 되는 것이다. 사도의 정의를 표현하고 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뜻과 통하는 자라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뜻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1장 3절『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교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골로새는 평신도가 세운 교회로서 믿음에 대한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탓에 이단들의 공격이 많았다. 그래서 바울은 온전한 믿음이 되도록 기도를 하는 것이다.
1장 4-5절『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텐 피스틴)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에이스 판타스 투스 하기우스)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휘민) 하늘에 쌓아 둔(텐 아포키이메넨) 소망(텐
엘피다)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투 유앙겔리우) 진리(테스 알레데이아스)의
말씀(토 로고)을 들은 것이라』 믿음, 사랑, 소망이 소개된다. 골로새
교인들은 믿음 사랑 소망을 가졌다. 이것이 복음의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텐 피스틴』은 그
믿음이다. 그 믿음은 그리스도의 믿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함을 믿는 믿음이다.
『에이스 판타스 투스
하기우스 아가페』는 성도들 속으로 들어가는 사랑이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사랑(아가페)을 세상 속에서 구제와 헌신과 자비를 생각하고 있으나, 사랑은 성도의 영을 살리는 사랑인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가페의 사랑은 죽어있는 영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랑은 다른 종교의 사랑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형제(성도들)를 사랑하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뜻을
실현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휘민 텐 아포키이메넨
텐 엘피다』는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뻗어나온 그 소망이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졌는데, 그 소망이 하늘로부터 뻗어나왔다는 것이다.
『투 유앙겔리우 테스
알레데이아스 토 로고』그 복음의, 그 진리의, 그 말씀에
라는 말이다. 즉 복음과 진리와 말씀이 동격이라는 것이다. 복음과
진리와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하고 말하는 것이 복음이고, 진리가 되며,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되어야만 한다.
1장 6절『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지 않으면,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전하는 것이다.
1장 7-8절『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바울이 에바브로에게 가르쳤고, 에바브라가 성도들에게 전했는데,
바울이 들어보니 그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한 것이다.
1장 9절『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프뉴마티케) 지혜(소피아)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텐 에파그노신)으로 채우게 하시고』
프뉴마티케 소피아는 영적(성령)인 지혜라는 것이다. 텐 에피그노신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아는 것이다. 즉 심령 속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와의 대화를 통하여 듣고 알게되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어 야댜와 같은 개념이다.
1장 10절『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아가도)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아가도는 하나님의 뜻이며, 이 땅에서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바울이 기도하는 것은 1장 9절에서 성령의 지혜와 호 로고스와의 관계를 통하여, 말씀을 듣는
것과 복음을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히 하는 것을 의해 기도한다는 것이다.
1장 11절『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뒤나메이)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휘포모네)과 오래 참음(마크로뒤미안)에 이르게 하시고』뒤나메이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휘포모네는 성도가 심령 속으로 들어온 성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마크로뒤미안은
복음의 힘든 과정을 참는 것이다. 운동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 위해 참고 훈련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1장 12절『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복음의 사역을 이루어낼 때, 성도는 빛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1장 13-14절『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아폴리트로신) 곧 죄 사함(아페신)을 얻었도다』흑암의 권세는 사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다. 교회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죄를 범하므로, 세상의 지배권을
사탄에게 빼앗겼다고 말한다. 그래서 도로 찾아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으면, 사탄에게 지배권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사랑의 아들의 나라는 다름 아닌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죽고 속량하심으로, 하나님이 피값을 지불하고 사탄의 노예를 사는 것이다. 노예를 사는
주인이 그 노예를 씻어주는 것이 죄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속량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속량받은 자는 사탄과 죄로부터 해방된다. 아페신은 죄 용서가 아니라, 죄가 제거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아무나 사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구원은 모든
자에게 열려있지만, 부르짖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부르짖어야 하는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왔는데,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고, 탕자의 비유처럼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기를 부르짖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함께 죽은 자가 된 것을 믿는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