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로새서 2장 16-23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2장 16절『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크리네토) 못하게 하라』크리네토는 판단하다 라는 의미다. 위에서 언급하는 모든 일들은 율법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의식들이다. 오늘날 교회들도 이런 절기와 비슷한 날들을 만들어서 지키거나 또는 여러 규칙들을 정해서 지키는 행위를 한다.
2장 17절『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토 데 소마 투 크리스투)이니라』장래 일의 그림자는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질은 토 데 소마 투 크리스투(교회는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소마를 몸으로 번역했으나, 몸된 교회를 의미한다.
2장 18절『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카타브라뷰에토)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사르코스)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신비주의를 강조하는 교회들이 있다. 카타브라뷰에토는 카타(~에 따라서)와 브라뷰에토(다스리다)의 합성어다. 신비주의를 따라서 다스리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신비주의 신앙은 주로 천사를 숭배하는 것과 천사로부터 능력을 받았다거나 계시를 받았다고 말을 하는 그런 유형이다. 그래서 그들은 천사를 만났으며, 그로부터 예언을 받았고, 능력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교인들에게 천사와 같은 존재로 믿겠끔하고, 예언이나, 권능을 나타내려고 해서, 사람들에게 돈을 갈취하려고 속이고, 현혹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사르코스는 육신으로부터 나오는 종교심을 의미한다. 종교심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2장 19절『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머리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고, 천사를 붙드는 일은 잘못된 것이라고 바울은 질책한다. 온 몸은 성도를 의미한다. 성도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으로 자라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2장 20절『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스토아케이톤)과 같이 규례(도그마티제스데)에 순종하느냐』
스토아케이톤은 질서정연한 것을 의미하며, 인본주의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인본주의 사상으로부터 벗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인본주의 철학은 세상의 학문이지만, 그리스도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인본주의인 세상의 질서를 따르지 말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도그마티제스데는 세상의 규례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교회를 세상의 규례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교회도 수많은 교회법(총회 노회 당회)을 만드는 것이다. 교회법으로 신도들을 규제하고, 다툼이 있으면 교회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교회가 세상 속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진리는 이러한 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되신 호 로고스의 말씀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2장 21-22절『(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프도란))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바울은 세상의 법(교회의 법)에 대해서 강한 어조로 말한다. 이것들은 율법주의 신앙으로 흐르게 된다. 프도란은 부패함이다. 사람의 계명과 교훈을 따라가면, 정말 필요한 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부패해진다는 말이다.
2장 23절『이런 것들(하티나)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에콘타 소피아스)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이런 것들은 신비주의, 율법주의에 대한 이야기다. 에콘타소피아스는 하티나를 수식한다. 지혜를 가지고 있는 이런 것들이라는 것이다. 율법주의나 신비주의는 지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자의적 숭배는 천사를 숭배하는 일이다. 몸을 괴롭게 하는 일은 계명 교훈 등 율법주의를 의미한다.
천사숭배는 영지주의의 한 분파이다. 천사를 통해서 능력을 받거나, 예언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자들이 마치 천사와 같은 능역을 부여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언 능력을 받았다고 하며, 다른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을 하거나, 국가나 사회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기도 한다. 신비한 말(방언)을 통해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여 병도 낫게 해주고, 이 땅에서도 복을 받아서 잘되게 해 달라고 빌고 있으며, 혹시라도 문제가 해결되면 신통한 능력을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감추어진 신성을 깨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영지주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원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버린다.
율법과 율법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율법주의는 그리스도를 제거한 인본주의 사상인 것이다. 율법주의와 인본주의 사상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회 안에서 만연한 율법주의(인본주의) 사상은 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세우게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다. 십계명 속에서 죄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계명에 얽매여 그것을 지키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계명이지만,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규정에 얽매이게 하는 것이 율법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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