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골로새서 3장 12-25절)『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3장 12절『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기독교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체적이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관념적으로 받아드린다. 그래서 종교화되고 있는 것이다. 호 로고스가 실체적으로 성도의 심령에 임재한다면, 생활 속에서 그 실체가 성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이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등으로 나타난다.
3장 13절『누가 누구에게 불만(몸펜)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아네코마이)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몸펜은 비방에 가깝다. 아네코마이는 참아주다 라는 의미다. 누가 누구에게 비방을 하는 것에 대해서, 엄밀히 비방받는 자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가 은혜를 받도록 하라는 것이다. 주께서 용서하신 것 같이 서로 비방하지 말고 참아주라는 것이다.
3장 14절『이 모든 것 위에 사랑(텐 아가펜)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텐 아가펜은 십자가의 사랑이다. 이 십자가의 사랑은 앞에서 말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서로 비방하지 말고 참아주는 것 위에 더 하라는 것이다. 이 것들은 육의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영의 마음으로 나타난다. 성도의 심령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의 마음인 것이다.
3장 15절『그리스도의 평강(아이레네)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아이레네는 평화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성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되라는 것이다. 평화는 적대시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3장 16절『그리스도의 말씀(호 로고스)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호 로고스는 성경 속에서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 속에 풍성히 임재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호 로고스로부터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성도 자신에게(헤아우투스) 가르치고 훈계하고 권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말 번역에는 헤 아우투스(너희 자신을)가 번역되지 않았다.
3장 17절『또 무엇을 하든지(에안)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호 로고스)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에안은 또가 아니라 만일(쉬운 일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이라는 의미다. 호 로고스는 성도의 심령 속에서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무슨 사역을 하던지 말을 할 때도 신도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 속의 호 로고스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그의 이름으로 하라는 것이다.
3장 18-19절『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휘포타쎄스데)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피크라이네스데) 하지 말라』휘포타세스데는 복종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피크라이네스데는 날카롭게 대하다 라는 의미다. 영적으로 아내는 하나님을 떠난 자를 의미하고, 남편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 성도가 된다. 성도는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내와 남편이 되어, 서로 행하라는 것이다.
3장 20-21절『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휘파쿠에테)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에레디제테)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통해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휘파쿠에테는 휘파(~아래)와 아쿠오(듣다)의 합성어다. ~아래에서 듣다 라는 의미다. 그래서 심령 안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로 부터 부모와 관련하여 듣는 것이다.
에레디제테는 자극하다 라는 의미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기의 뜻대로 훈육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교훈과 훈계를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고 행하라는 것이다.
3장 22절『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사르카)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사르카는 육적인 종교심을 의미한다. 『육신의 상전』은 헬라어 성경에는 토이스 카타 사르카 퀴리오이스 이다.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육체를 따라 사는 상전을 의미한다. 종들은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에게 육체를 따라 사는 상전에 대해서 여쭈어보라는 것이다. 음성을 들을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상전에게 순종하라는 것이다.
3장 23절『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마음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종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께 여쭈어보고, 그의 음성을 들은 후에 하라는 것이다.
3장 24절『이는 기업의 상(클레로노미아스)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클레로노미아스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종이 상전에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행하는 자들이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3장 25절『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상전과 종의 관계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자들을 의미한다.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그런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주라고 말을 하면서 말로만 주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가 주가 되기 위해서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를 믿어야 하고, 그 분에게 나아가 모든 것을 여쭈어보고,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호 로고스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바로 의를 행하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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