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


(데살로니가전서 1장 1-10절)『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1장 1-2절『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프로슈콘)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데살로니가 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해서 믿음이 좋았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슈콘은 관상기도를 의미한다. 성도가 심령 속에서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영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호 로고스는 성도의 영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하나가 된다. 기도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 

1장 3절에서『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믿음, 사랑, 소망의 세가지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데, 믿음으로 사역을 하고, 사랑(아가페)은 수고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영을 살리는 수고를 의미한다. 오늘날 사랑을 남에게 어떤 행동을 통해서 사랑을 표현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망의 인내에서 인내라는 말은 고통으로부터 참는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에서는 인내라는 단어가 휘토모네스로 표현되었다. 휘토모네스는 기다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휘토모네스(기다림) 테스 엘피도스(소망) 투 퀴리우(주님을 향하여) 라고 되어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방문했는데, 마르다는 음식을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서 앉아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마리아가 말씀을 기다리는 그 장면이 바로 휘토모네스라는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1장 4-5절『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아가페메노이)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엔 로고)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프레로포리아)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아가페메노이는 십자가의 사랑을 의미한다. 아가페메노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예수와 함께 되는 부활과 성령세례와 성도의 심령 가운데, 호 로고스의 임재를 의미한다. 엔 로고에서 로고는 관사가 없으므로, 일반적인 사람의 말을 의미한다. 관사가 붙으면, 로고스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호 로고스는 성도의 심령 속에 거하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프레로포리아는 충만함을 의미한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충만함)』은 성령의 역사를 나타낸다.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복음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너희에게 말로 전한 것이 말로만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1장 6절에서『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여기에서 환난으로 표현된 헬라어 원어는 들맆세이(강권으로 떠미는)이다. 성도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강권으로 이끄시는대로 말씀을 받게 되면 그것이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는다는 것이다. 성도는 직접 지성소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기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렇게 하는 교회라고 바울이 칭찬하는 것이다. 

여기서『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라는 표현은『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헬라어:에게이렌) 아들』이다. 왜냐하면, 우리말 번역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원래 헬라어(에게이렌)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들어가셔서 죽은 자(영)를 살리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은 영어성경에서는 heaven으로 되어 있으나 헬라어 원문에는『우라논』이다. 우라논은 성령이 함께 하는 성도의 마음을 의미한다. 즉 성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하시는 것이다. 성도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임하시므로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영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노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둘째 사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장 7절『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튀톤)이 되었느니라』튀톤은 물건을 찍어내는 틀을 의미한다. 데살로니가 교회 사람들은 다른 교회의 모형이 되었다는 것이다. 

1장 8절『주의 말씀(호 로고스 투 퀴리우)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헤 피스티스)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호 로고스 투 퀴리우는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 말씀이신 호 로고스의 복음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로부터 퍼져나갔다는 말이다. 헤 피스티스는 호 로고스의 약속(새언약)에 대한 믿음이다. 그 약속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해 주신다는 그 새언약을 의미한다. 

1장 9-10절『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들류에인)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에게이렌) 그의 아들이 하늘(톤 우라논:복수)로부터 강림하실(아나메네안)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오르게스)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우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대조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외에는 모두가 우상이라는 말이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차이는 하나님처럼 되는 것에 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은 기독교 차원에서 볼 때, 우상이 되며, 다른 종교는 우상이 아니라, 그들 종교의 목표가 된다. 그래서 기독교와 다른 종교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신앙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들류에인은 종(하인)이다. 기독교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종이 된다. 그러나 다른 종교는 신자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원한다. 종은 주인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자가 된다. 주인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나메네안은 강림이 아니라, 아들을 기다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이 아닌데, 번역하는 자가 마치 재림처럼 여겨지게 한다. 톤 우라논은 하늘의 복수 형태로서, 성도의 각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가 임재하는 그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래서 성도가 심령 속에 임재하는 성전에서 머물면서 호 로고스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호로고스에 대해서 바울이 설명한다. (영적)죽은 자들 중에서 살리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오르게스는 노하심(진노)로 번역되었는데, 교회 안에서 의를 행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의를 행하지 않는 자는 바로 호 로고스와의 관계를 맺지 못하는 자를 의미한다. 신도가 심령 속의 성전과 그 성전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를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 절차에 따라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데, 심령 속에 호 로고스를 모른다면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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