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21-10)『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

21-2절『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싸움 중에라는 표현은 헬라어 원문과 다르다. 『투 데우(하나님) (안에서) 폴로(많은) 아고니(인도하심)』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23-4절『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옳게 여기심을 입어 라는 표현은 헬라어 『데도키마스메다』를 표현한 것이다. 도키마존티(감찰하는, 시험하는)와 같은 의미의 단어다. 하나님은 믿음을 계속 시험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25년간 믿음을 시험하셨으며, 출애굽한 백성들에게도 믿음을 시험하셨다. 그래서 옳게 여기심을 입다라는 말은 아래의『하나님께서 감찰하시는(또는 시험하시는) 믿음을 통과하는 믿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 5절『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2 6절『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이 말씀처럼 삶을 강력하게 만드는 말씀이 없다. 우리의 삶은 초점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을 때 강력한 진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인정과 인기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진리는 뒷걸음질 치며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예수님께서도 당시의 지도자들이 사람의 영광을 구하고 있다고 책망하신 적이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은 이들과 달리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5 41절에서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그리고 요한복음 5 44절에서『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인정에 그 온 마음이 가 있는 사람만이 사람을 위해 자신의 특권들을 내려놓는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리하여 바울 사도는 사도로서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권위를 앞세우지 않고,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2 7절『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바울은 그 어미의 심정으로 사랑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권면했다. 어미와 아비가 자기 자식에게 권하듯 권할 수 있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했던 바울의 삶에서 비롯된 섬김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그들이 불러주신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속해주신 까닭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라는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초점이 하나님께 맞춰져야 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섬김 받고 군림하시게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약한 이들을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2 8절『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아가페로이) 자 됨이라』아가페로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의미한다.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다.

2 9절『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토 유앙겔리온 투 데우)』토 유앙겔리온 투 데우는 말씀이신 호 로고스를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생업을 위해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함이었다. 특정 교회에서 사역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전도활동을 한 것이다.

2 10절『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복음을 전하는 자는 다른 직업을 가지던 가지고 있지 않던 간에 거룩하고, 옳고, 흠없는 자로서 삶을 살고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말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복음 전하는 자의 삶은 자신이 증인이고,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말했다. 구약에서 말하는 두 증인을 의미한다. 거룩하고, 옳고, 흠이 없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되어 거듭났으며, 성령세례를 받고,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의 뜻에 따라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 볼 때,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자신 스스로 증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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