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히브리서 11장 30-40절)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1장 30절『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씨의 약속을 바라보니,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육적인 몸(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도의 심령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것을 계시로 보았다는 것이다.
11장 31절『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라합은 이방인이면서 언제 정복될지 모르는 기생의 집안이지만, 그녀는 이미 계시를 통해 장차 오실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구원할 것이라는 것이다.『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그 믿음의 고백을 담아 정탐꾼들에게 간구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이 두 정탐꾼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약조한다. 『누설하지 않으면 반드시 살려 줄 것이다』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에 들어 올때에, 붉은 줄을 창문에 매어 두면 네 집은 구원받을 것이다 라고 약속했다. 이 장면은 출애굽사건을 연상시킨다. 애굽에서 첫 유월절 양의 피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창문에 맨 붉은 줄이 구원하여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라는 증표로 쓰였다. 라합은 두 정탐꾼을 사흘 동안 숨겨두고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도왔다. 그리고 약속대로 붉은 줄을 창문에 매고 기다렸다.
11장 32-34절『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들을 하신다. 믿음은 바로 씨의 약속을 가진 자다.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성도의 심령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는 자를 하나님이 보호하신다.
11장 35-38절『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
기독교 초기 박해시대 때의 어떤 여인은 자기 가족의 순교를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용납했다. 주님이 부활하신 사건이 자연발생적으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 신자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불렸다. 기독교 출발의 결정적 동기는 부활이었다. 그런데 유대교로부터도, 로마정권으로부터도 박해를 당했다. 그래서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그 뼈아픈 순교의 현실을 초대교회의 여인들은 부활의 소망으로 이겼다. 이렇게 참혹하게 죽지만, 오래지 않아 영광의 부활체로 다시 살아난다는 소망과 믿음으로 현실을 감내했다. 그래서 그 극심한 고난과 박해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11장 39-40절『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이러한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의 증거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인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초대 교회 당시의 신자들)에게는 더 좋은 약속(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예비하셨다는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은 약속이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나, 우리는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부활신앙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함을 믿는 자들은 그들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므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은 온전한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졌는데, 초대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은혜를 주셨는데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교회 사람들에게 믿음의 선진과 같은 믿음을 가져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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