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고린도전서 1장 1-18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장 1절『하나님의 뜻을 따라(디아 텔레마토스)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디아 텔레마토스는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 라는 의미다. 통하여 라는 말의 의미는 소통하다 라는 것이다. 사도라는 말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자라는 의미다. 바울 뿐만 아니라 소스데네라는 자도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과 소통하는 신도가 있다면, 그는 사도가 되는 것이다. 

1장 2-3절『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테 엨클레시아 투 데우)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토 오노마 투 퀴리우 헤몬 예수 크리스투)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테 엨클레시아 투 데우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라는 말이다.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면 성도가 아닌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 있는 신도가 거룩하여진 성도라는 의미가 아니라,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말하는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라는 것이다. 어떤 신도가 그런 자인지 알 수는 없지만, 바울이 성도의 정체성을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다.『토 오노마 투 퀴리우 헤몬 예수 크리스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호 로고스라는 이름이다. 신도가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를 간절히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정체성인 것이다. 

1장 4절『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에피 테 카리티)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에피 테 카리티는 은혜 위에서 라는 말이다. 그래서『그리스도 안에서 은혜 위에 있는 너희』라는 말이 된다. 

1장 5-6절『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에베바이오데)』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사역을 위한 지식(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아는 지식)과 호 로고스를 통하여 나오는 말이 능숙해지는 것이다. 에베바이오데는 확실하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1장 7절『너희가 모든 은사(엔 메데니 카리스마티) 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아포칼맆신)을 기다림이라』엔 메데니 카리스마티는 단 하나의 은사라도 라는 의미다.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각 사람마다 은사를 다 받았다는 것이다. 아포칼맆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의미한다. 은사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다리는 것이다. 

1장 8절『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예수 그리스도의 날은 그리스도께서 계시로 나타나는 그 날을 의미한다. 계시는『덮개를 벗기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감추어진 비밀이 드러나는 것이다. 비밀이 드러나는 것은 호 로고스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심령에 임재하시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는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사역을 위한 것이다. 

1장 9절『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코이노니아)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피스토스)』 코이노니아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하여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피스토스는 신실하다 라는 의미다. 신실하신(믿음직스러운) 하나님이 성도들을 불러서, 그들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와 만나서 교제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도를 부르심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도록 소통하기 위함이다. 

1장 10절『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투 오노마토스 투 퀴리우)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투 오노마토스 투 퀴리우는 호 로고스를 의미한다. 바울이 호 로고스의 말씀 안에서 권한다는 것이다. 신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자신의 생각과 뜻을 말하면서, 호 로고스의 말씀인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호 로고스의 말씀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나라 복음의 사역과 관계되는 말을 하라는 것이다. 

1장 11-12절『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고린도 교회의 분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성도들이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나가기 때문이다. 

1장 13절『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바울이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사역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1장 14-16절『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울이 세례를 베푼 자는 몇 명밖에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세례를 베푼 자가 마치 교파의 우두머리인 것처럼 고린도교회 신도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례를 베푼 것은 사람이 할지라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기 때문에 세례를 주는 자는 대행자일 뿐이다. 

1장 17절『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 자신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지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례는 거듭나는 과정의 한 의식일 뿐이다. 내적으로 정말 거듭났다면,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다. 바울은 말이 서툴렀다고 한다. 말의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 만 전한 것을 강조한다. 

1장 18절『십자가의 도(호 로고스)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십자가의 도라고 번역된 것에 대해서, 헬라어는 십자가의 호 로고스이다. 호 로고스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가 구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전하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