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히브리서 9장 15-28절)『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9장 15-18절『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이루신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자들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심이다. 첫언약은 구약시대 율법에 의한 언약을 의미한다. 이 언약(여인의 후손)도 희생제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9장 19-22절『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출애굽기 12장 6-7절에서『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에서 먼저 양을 죽여서 각을 뜬다. 그리고 피를 양을 먹을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다. 12장 8-11절에서는『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라고 했다. 

히브리 백성이 어린양의 고기를 먹기 시작하므로 피의 효능이 나타난다. 그러나 밖에서는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게된다. 오늘날 성찬을 할 때 떡을 먹지 않고 잔만 마실 수는 없다. 구원의 시작은 어린양을 죽여서 그 어린양의 고기를 먹으므로 먹는 자가 그 어린양의 죽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린양의 죽음이 먹는 자에게는 생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속량(구속)이다. 고기를 먹는 것이 돈을 지불하고 사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피를 보고 넘어가신다. 어린 양의 고기를 먹은 자의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속량이 죄사하심』이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1장 7-10절은『속량이 없이는 죄사하심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속량은 돈으로 노예를 산 것 처럼, 노예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속량받은 자는 주님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린양의 고기를 먹는 행위다. 어린양의 고기를 먹는 자는『나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럴 때 주님이 노예의 더러움을 씻어주신다. 죄를 용서받기 전에 속량이 먼저 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9장 23절『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더 좋은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속량이라는 의미와 죄 사함이 동시에 적용된다. 하나님이 사탄으로부터 자기 아들의 피값으로 사는 것이 속량이다. 속량이 없는 죄사함은 없다. 노예를 산 다음에 더러움을 씻어주는 것이다. 디도서 2장 14절에서『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속량이 되어야 깨끗하게 된다. 하나님이 회개하여 옛사람의 옷을 벗는 자를 속량하셔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9장 24절『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톤 우라논)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톤 우라논은 관사가 있는 단수의 하늘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관사가 있는 복수의 하늘은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사하심을 받을 때는 지성소로 들어가서 희생동물의 피로 속죄박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시어, 세상죄를 지고 성부 하나님 보좌로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거듭난 자의 심령 속으로 임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도의 심령 안에 임재하시는 것도 성육신이라고 한다. 

9장 25절『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세상 끝(종말)이라는 의미는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에 들어오신 이후 부터,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오순절 성령 강림부터 예수님 재림 때까지를 의미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탄의 종이 되었다. 사탄의 자식이라는 표시가 육체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육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거듭나), 새생명이 되어 하나님이 성령세례로 인을 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표시를 해주셨다. 이제 사탄의 지배에서 호 로고스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부터 종말 때 까지 사탄과의 영적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호 로고스께서 주인되시므로, 사탄이 감히 접근도 못하나, 사탄은 할 수만 있다면, 택한 자를 넘어뜨리려고 한다. 사탄을 물리치는 방법은 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하고,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9장 27절『한번 죽는(아포다네인) 것은 사람에게(토이스 안드로포이스)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크리시스)이 있으리니』 아포다네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다. 토이스 안드로포이스는 관사가 있으므로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심령 가운데, 호 로고스가 임재하여 구원받은 성도를 의미한다. 구원받은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번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라고 말하는 그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은 단 한번으로 끝나며, 그래서 모든 죄가 예수의 피로 사라지는 것이다. 원죄만 용서받고, 앞으로 발생할 세상죄는 사하심을 받지 않았다고 믿는 자는 믿음대로 하나님이 율법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 크리시스는 심판이 아니라 판단이다.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죽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신다. 

9장 28절』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엔 크리스토스) 나타나시리라』죄와 상관없이 라는 말은 부활하시어, 엔 크리스토스는 성도의 심령 안에 임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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