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전서 15장 1-24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15장 1-2절『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 바울이 전한 복음은 부활의 복음을 의미한다. 바울이 전했을 때는 부활에 대해서 잘 알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활을 잘못 이해하는 자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15장 3-8절『내가 받은(파렐라본)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파렐라본은 부활의 은혜를 받은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활은 역사적인 부활을 의미한다. 부활은 역사적인 부활과 현재적 부활과 미래적인 부활이 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로 기독교인들은 모두 이 역사적인 부활을 믿는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여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면서 열두제자들과 오백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많은 형제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의 형체를 보여주신 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울에게도 나타나신 것이다. 

15장 9-11절『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바울은 기독교인을 핍박하였던 자였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형제들에게만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5장 12절『그리스도께서 죽은(네크론) 자 가운데서(에크) 다시 살아나셨다(에게게르타이)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아나스타시스)이 없다 하느냐』 부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부활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는 죽고, 하늘로부터 오는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교회 신도들은 앞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역사적 부활이라고 말하고, 뒤에서 말하는 부활은 미래적 부활이라고 말을 한다. 에게게르타이는 살아나다가 아니라 일어나다 (arize)라는 의미다. 아나스타시스는 위(하늘)에서 세워지다 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났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인 죽음으로 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자는 함께 부활되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아나스타시스는 위로부터 세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자를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게 현재적 부활이다. 곧 거듭남이 부활인 것이다. 바울은 왜 이 부활이 없다고 하느냐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신도들이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과거의 부활과 미래의 부활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15장 13-14절『만일 죽은 자의 부활(아나스타시스)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에게게르타이)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여기에서도 아나스타시스와 에게게르타이로 말하고 있다. 에게게르타이는 살아나다가 아니라 영적으로 일어나다 (arize)라는 의미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의미이고, 아나스타시스는 위(하늘)에서 세워지다 라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부활이 영적인 이야기인가 라고 오해할 수 있다. 부활은 외형적으로 몸이 살아나는데, 그 몸이 부모로부터 받은 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몸이라는 것이다. 

15장 15절『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에게게르타이)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영적관계 회복을 위한 부활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영의 몸으로 살리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15장 16-18절『만일 죽은 자(네크로이)가 다시 살아나는 일(에게이로타이)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에게게르타이)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죽은 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 다시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일이다. 먼저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다면, 믿음도 헛것이요, 아무도 구원받을 자가 없다는 것이다. 

15장 19절『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도 헛된 것이다. 부활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삶은 세상적인 삶이라고 표현된다. 궁극적으로 부활(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삶은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께서 임재하시는 것을 말하며, 성도 또한 육적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서 호 로고스 안으로 들어가 그 분과 대화하고 동행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부활은 현재적 부활이 되는 것이다. 

15장 20절『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네크론)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에게게르타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아파르케)가 되셨도다 』다시 살아나사에서 『다시』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는 없다. 잠자는 자들은 누구인가?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끊어져 잠자는 자로 표현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 중에서 처음으로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15장 21-22절『사망이 한 사람(첫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마지막 아담)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조오포이에데손타이)』아담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된 자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자를 의미한다.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은 아담으로 부터 죽음(육)을 물려 받은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부터 생명(영의 몸)을 물려받은 것이다. 조오포이에데손타이는 살리심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의미다. 조오포(생명)이에데손타이(만들다)에서 조오포의 어근인 조에는 영적 생명을 의미한다. 

15장 23-24절『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파루시아)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파루시아는 파라(옆에)+우시아(존재하다:영어의 be동사)의 합성어로서 강림이 아니라, 주님이 내 옆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님의 임재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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