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린도전서 15장 25-44절)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 

15장 25-26절『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다나토스)이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사탄을 따르는 원수들이 왕이신 그리스도의 발 아래 무릎을 꿇게 되어 있다. 다나토스는 죄 가운데 죽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둘째 사망을 의미한다. 

15장 27절『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부활하신 주님의 발 아래 둘 것이다. 그래서 만물을 발 아래 두신 이는 만물 속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은 만물 위에 있는 분이지, 만물 속에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15장 28절『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만물을 복종하게 하신 주님도 성부 하나님께 복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활의 신앙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께 온전한 복종이 되기 위해서는 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해야만 한다. 즉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아니고서는 온전한 순종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의 순종인 것이며, 부활의 신앙인 것이다. 

15장 29절『만일 죽은 자(네크론)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에게이론타이)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죽은 자들(네크론)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를 의미한다. 에게이론타이는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를 받는 목적은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함이다.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15장 30절『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것이다. 

15장 31절『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아포드네스코)』 하나님과의 영적 회복을 위해서는 육적 자아(옛사람)이 죽고 영적(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육적 자아가 죽기 위해서는 날마다 죽노라가 되어야 한다. 아포드네스코는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하며, 성도가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되는 죽음을 의미한다. 

15장 32절『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성도가 비신자를 위하여 맹수와 싸웠는데, 그 비신자가 영적으로 살아나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는 것이다. 사람이 영적으로 살아나지 못하면, 세상에서 사는 목적이 없는 것이다. 그냥 먹고 마시고 살다가 육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15장 33-34절『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 부활신앙을 가지지 못한 신자들이 부활 신앙을 가진 자를 괴롭힐 수 있다.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하는 자들은 율법주의, 인본주의에 빠져있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의를 행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삶이다. 그래서 성도가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를 행하는 길이다. 

15장 35절『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네크로이)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에게이론타이) 어떠한 몸(소마티)으로 오느냐 하리니』 네크로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들이다. 에게이론타이는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몸으로 오느냐 라는 것이다. 부활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적으로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므로, 영적인 이야기 외에도 이 몸이 어떤 몸인가 라는 것이다. 

15장 36절『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씨가 죽어야 뿌리가 내리고 싹이 나듯이, 육의 몸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15장 37-38절『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농부가 씨를 뿌리지만, 장래의 형체를 뿌린다는 것이다. 나중에 씨가 열매가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씨를 뿌린다는 것이다. 씨가 형체로 바뀌는 것이다. 

15장 39절『육체(사륵스)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15장 35절에서는 몸이 소마였지만, 여기는 육체로 번역된 것이 사륵스이다. 소마는 몸을 의미하지만, 사륵스는 하나님을 찾는 종교심을 의미한다. 짐승과 새와 물고기는 사람의 사륵스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창조주가 정해주신 생태계의 질서를 따르는 사륵스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세상의 피조물은 하나님을 찾는 종교심이 있다는 것이다. 

15장 40-41절『하늘에 속한 형체(소마타)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소마타)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형체로 번역된 것은 소마타로서 몸이다. 땅에 있는 형체나 하늘에 있는 형체가 어느 시점에서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몸과 사륵스가 교차되면서 소개되고 있다. 바울은 씨에 대해서 말하면서 몸과 비교하고, 종교심을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과 비교하고, 다시 몸을 하늘의 해와 달과 별과 비교하여 말하고 있다. 이렇게 바울이 다양하게 설명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몸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15장 42-44절『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프쉬키콘)으로 심고 신령한 몸(소마 프뉴마티콘)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프쉬키콘)이 있은즉 또 영의 몸(소마 프뉴마티콘)도 있느니라』썩을 몸은 하나님과 단절되었을 때의 육의 몸(혼의 몸:옛사람, 자아)을 의미한다. 부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영의 몸이 썩지 않는 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는 몸은 모두 육의 몸이다. 소마 프뉴마티콘은 신령한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다. 프쉬키콘은 육의 몸으로 번역되었는데, 혼의 몸이다. 영의 몸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의 몸이고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몸인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