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고린도후서 3장 1-18절)『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3장 1절『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쉬니스타네인)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쉬니스타네인은 쉬니(함께)와 스타네인(세우다)의 합성어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워진 것을 의미한다. 다시 번역을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워진 우리가 다시 시작하겠는가, 그리고 편지로서 세워진 사실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것이다.
3장 2절『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아나기노스코메네) 읽는 바라(기노스코메네)』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워진 것이 우리 마음 안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게 편지라는 것이다. 기노스코메네는 알려지다 라는 의미다. 아나기노스코메네는 하늘에서 알려진 것이다. 우리의 마음 안에 편지가 있고, 성도들의 마음 안에도 하나님의 편지가 있다는 것이다.
3장 3절『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디아코네데이사)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프뉴마티)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사르키나이스)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디아코네데이사는 우리의 섬김으로 말미암아 라는 의미다. 섬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은 임마누엘이라는 의미가 된다. 지금 우리의 심령 속에서 살아계신 호 로고스가 되는 것이다. 2000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심령 속에서 살아계신 호 로고스와 연합되는 것이다. 프뉴마티는 성령을 의미한다. 사르키나이스는 육신(신을 찾는 종교심)을 의미한다. 그 종교심은 인간의 마음과 연관되어 있다.
3장 4절『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디아 투 크리스투)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디아 투 크리스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라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 것이다.
3장 5절『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히카노이)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히카노테스)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히카노이는 충족(채우심)이다. 인본주의는 스스로 종교심이 충족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충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진다.
3장 6절『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프뉴마)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성도를 충족하게 하는 것은 새언약의 일꾼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새언약의 일꾼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지,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뉴마는 성령을 의미한다.
3장 7절『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을 올랐다. 그리고 40일이 지난 후에 십계명을 받고 내려왔는데,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광채로 나타났다. 그런데, 백성들은 두려워하므로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데, 그 영광은 없어질 영광이라는 것이다.
3장 8절『하물며 영(프뉴마토스)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프뉴마토스는 성령을 의미한다. 성령의 사역을 하는 직분은 더욱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잠깐 보여진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3장 9절『정죄(카타크리세오스)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정죄(죄를 판단하는 것)의 직분은 율법을 의미한다. 율법을 받아서 산을 내려온 모세에게 영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의의 직분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사역하는 직분이다.
3장 10절『영광되었던(데돜사스메논) 것이 (토 메레이)더 큰(휘페르발루시스)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영광되었던 것은 모세의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나타난 것을 의미한다. 토 메레(부분적)이라는 단어가 번역되지 않았다. 모세의 영광은 부분적이라는 것이다. 휘페르발루시스는 뛰어나는 이라는 의미다. 더 뛰어난 영광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이 더 큰 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따르는 것은 영광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3장 11절『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없어질 영광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이다. 길이 있을 것(영원히 지속되는 영광)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광을 의미한다.
3장 12절『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소망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3장 13절『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없어질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장 14절『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에포로데)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내려온 모세의 영광을 가리듯이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두려워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포로데는 겁에 질리게 만들다 라는 의미다. 유대인들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다 라는 인식이 여전히 있다.
3장 15절『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유대인들의 마음속에서 모세의 수건이 여전히 두려움으로 가려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3장 16절『그러나 언제든지(데 에안)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에안은 불가능하지만 만일이라는 가정법이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수건이 벗겨진다는 것이다.
3장 17절『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자유는 죄로부터 자유를 의미한다. 율법은 죄의 그물과 같은 것이다.
3장 18절『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프뉴마토스)으로 말미암음이니라』바울은 세가지를 말한다. 주의 영광을 보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고,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된다. 이 세가지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주의 성령이 역사해야 하는 것이다. 프뉴마토스는 성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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