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
(고린도후서 4장 1-18절)『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4장 1절『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디아코니안)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엥카쿠멘)하지 아니하고』디아코니안은 사역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역은 긍휼하심에 따라 주신 것이다. 엥카쿠멘은 좋지 않은, 나쁘지 않은 이라는 의미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를 의미하다.
4장 2절『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아이스케네스)을 버리고 속임으로(파누르기아) 행하지(페리파렌투스)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돌룬테스)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타네로세이 테스 알레데이아스)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쉬네이신)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아이스케네스는 외식하는 일이다. 겉으로는 거룩한 채 하면서 부끄러운 일을 하는 자를 의미한다. 바울은 그런 생활을 버리라고 말한다. 파누르기아는 교활함이다. 페리파룬테스는 걸어가다 라는 의미다. 호 로고스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돌룬테스는 조절하다 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조절하여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타네로세이 테스 알레데이아스 는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함께 세우는 진리를 나타내라는 것이다. 쉬네이데신은 함께 데려가다 라는 의미다.
4장 3절『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복음이 가리웠다는 말은 복음을 듣는 사람이 받아드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너무 실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는 자는 멸망당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4장 4절『그 중에 이 세상의 신(호 데오스 투 아이오노스)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타 노에마타 톤 아피스톤)의 마음을 혼미하게(에튀플로신)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호 데오스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투 아이오노스는 그 세대다. 호 데오스 투 아이오노스는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대를 의미한다. 타 노에마타는 머리, 생각으로 믿는 것이다. 톤 아피스톤은 교회를 다니는데, 실제는 믿지 않는 자들을 의미한다. 머리로 믿는 것은 불신이며, 성령의 마음으로 믿어야 참 믿음이 된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눈을 멀게한다. 에튀플로신은 눈을 멀게하다 라는 의미로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4장 5절『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휘몬)의 종(둘로스)된 것을 전파함이라』예수님은 주인이고, 신도는 예수님의 종이라는 것이다. 둘로스 휘몬은 너희를 섬김으로 사역하는 자들이다 라는 의미다.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종(디아코니아)이 되고, 신도들을 섬기는 종(둘로스)이 되는 것이다.
4장 6절『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머리로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광채가 비춰지지 않지만, 마음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광채가 비춰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광채를 받은 자들이 말씀의 사역자로 세워지게 된다.
4장 7절『우리가 이 보배(데사우론)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뒤나메오스)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데사우론은 보배인데, 의미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인간의 몸을 의미한다. 짓그릇은 보잘 것 없지만, 짓그릇에 담긴 보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뒤나메오스는 신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4장 8-9절『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들맆보메노이)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들맆보메노이의 원형은 들맆시스다(영어로 push) 하나님이 성도를 심령 속의 지성소로 들어가도록 압박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질그릇에 있는 보배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보배 속으로 들어가면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낙심도 없고, 버린 바 되지 않고, 망하지도 않는 것이다.
4장 10절『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예수의 죽음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예수의 생명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고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4장 11절『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디아) 죽음(다나톤)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디아는 ~로 인하여이다. 다나톤은 죄 가운데 죽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사역자들은 이러한 것을 믿지 않는 자를 위하여 나타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4장 12절『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사역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이 역사하도록 나타내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부활의 생명이 역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포함해서 사역자들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삶을 보여주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4장 13절『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토 아우토 프뉴마 테스 피스테오스)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토 아우토 프뉴마 테스 피스테오스는 믿음의 성령이다. 성령을 받지 않은 자의 믿음은 자기가 믿는 종교적 믿음이다. 믿음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늘로부터 받는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4장 14절『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믿음은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고, 성부 하나님이 다시 부활시킨다는 그 믿음을 의미한다.
4장 15절『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너희라는 말은 믿음이 없는 자들을 의미한다. 바울이 너희를 위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위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생명을 너희에게 전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4장 16절『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겉사람은 육을 따르는 옛사람을 의미하고, 속사람은 성령의 법을 따르는 새사람을 의미한다.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한다.
4장 17절『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들맆세오스)의 경한 것(엘라프론)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들맆세오스는 하나님이 심령 속의 지성소로 떠미는 것이다. 엘라프론은 가볍게 라는 의미로, 가볍게 지성소로 떠미는 것이다.
4장 18절『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보이지 않는 것은 심령 속의 호 로고스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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